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6 ~ B.C. 43)

2025년에는 고령화율이 20%를 돌파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고 한다.

노인이 된다는 게 남의 일이 아닐진대, 무려 기원전 로마 시대(B.C. 50쯤?)에 나이 듦의 장점을 강하게 설파한 이가 있었으니, 그 옛날 어떤 노인이 20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들려주는 100세 시대 조언일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어떤 노인은 바로 마르쿠스 투릴우스 키케로다. 공화정 로마 말기의 정치가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해 철학 술어를 만들고, 라틴어를 사상 전달의 수단으로 삼은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중세 철학의 대표적 스승으로 공화정을 옹호했던 키케로는 독재를 꿈꿨던 안토니우스의 손에 최후를 맞았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이 세상에 나이 드는 게 달가운 사람은 없을 거라고 본다. 허나 무려 기원전 로마 시대에 노년의 정점에 관해 고찰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익히 알려진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이다.

키케로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스토아학파의 논리에 따라 사람이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이성적으로 살면, 인생의 온갖 시기를 근심 없이 견딜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고, 노쇠해지는 시기도 잘 대비해서 ‘노인이 되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보통 노년을 희망적이지 못한 상태로 인식한다. 키케로 역시 세상 사람들은 노년기에 접어들면 즐거움이 줄어들고, 남들에게 외면당할 거라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그는 우선 노인이 수준 높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상에는 청년들이 하는 일은 노인이 하지 못한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지만, 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육체적인 힘이나 행동력이 아니라 사려와 관록, 식견이라는 것이다. 노년이 되면 그런 요소들이 풍부해지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감히 따라 하기 힘든 일도 해낼 수 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나름 적절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흔히 노년기에 접어들면 육체가 쇠약해진다고 하지만, 열의를 가지고 활동을 지속하는 한 노인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오히려 지적인 능력이 좋아지고 기억력이 감퇴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말도 남겼다.

“기억력이 감퇴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라.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비상금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렸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키케로는 관록에서 나온 풍부한 지식이 언어들을 새롭게 연결하는데 한몫하면서 로마 시대 최고의 명사로 남는다.

또한 키케로는 노년의 늙어감에 대해 이 같은 말도 남겼다.

“늙으면 젊은이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며 불안에 떨 필요는 없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싫어하기는커녕 존경하며, 노인들이 많은 가르침을 전해주길 원한다. 지식을 연마하고 정신력을 단련하는 데 피땀을 흘리면 체력의 노쇠함을 느낄 틈이 없다. 쉼없이 일하는 사람은 노년기가 다가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노년의 장점

키케로는 노년기의 장점으로 한 가지를 더 강조했는데, 바로 노년이 되면 욕망이 거의 사라진다는 것이다.

젊을 때는 넘치는 욕망이 사고를 방해하거나 도덕에 반하는 해로운 행위로 이끌기 십상이지만, 노년이 되면 그런 것들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따라서 육체적 욕망과 야망에서 멀어진 노년에는 학문을 익히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키케로는 “적당한 식사와 담소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고, 자연에 둘러싸여 만년을 보내는 일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키케로가 살던 기원전 시대에도 사람들은 노인들을 보며 “성질이 급하고 괜한 걱정도 많으며 금방 토라지는 데다가 고집불통이기까지 하다”고 평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키케로는 성질 급하고 괜한 걱정이 많으며 금방 토라지고 고집불통인 사람은 젊은이들 중에도 있으며, 오히려 느긋하고 온화한 노인이 더 많다고 딱 잘라 말했다.

노년의 죽음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키케로는 스토아학파다. 스토아학파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려는 학파로 만약 인간이 죽어서 영혼이 사라진다면,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며, 반대로 죽어서도 영혼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세계로 간다면, 오히려 죽음은 간절히 바랄 일이 될 것이라고 키케로는 말했다.

“노년기의 결실은 지금까지 행해온 미덕과 선행을 회상하고 축적하는 것”이라는 키케로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키케로에게 죽음은 곧 원숙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키케로는 불안한 노년의 죽음에 대해 “죽음의 문제는 노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젊은이들에게도 똑같이 존재한다”면서 어차피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런 걱정 해봐야 쓸데없다고 말했다. 언제 갈지 모르는 건 누구나 똑같으니 느긋하게 살아도 괜찮고, 죽음이 아니라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인생의 화두라고 조언했다.

키케로에게 나이가 듦은 안티에이징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 자체를 그대로 즐기는 여유를 쌓아가는 모습이다.

젊음과 늙음 그 어느 것도 별개도 아니고 양자택일도 아니다. 이어지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본다. 이왕 숙명적으로 겪게 될 거라면 키케로가 말한 노년의 장점들에 좀 더 집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문득 영화 ‘인턴’의 대사가 생각난다. “경험은 늙지 않아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