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전국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해제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안이 가결된 사례로, 군 병력이 국회에 투입되면서 헌정 중단 위기까지 갔으나 민주당과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의 협력으로 사태가 수습됐다.

3일 오후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반국가세력 척결과 자유대한민국 수호”를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국회가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계엄 선포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이 실탄 지급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총기로 무장한 채 국회로 투입됐다. 계엄군은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진입을 시도했으나, 국회 경비원들과 당직자, 의원 보좌관들의 저항에 막혔다. 이 과정에서 국회경비대는 국회의원들의 출입마저 통제하려 했으며, 임광현 의원은 담을 넘다가 부상을 입기도 했다.

계엄사령부는 박안수 육군대장 명의로 발표한 포고령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 활동과 정치적 집회를 전면 금지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 언론·출판의 계엄사 통제, 파업·집회 행위 금지 등을 선포했다.

여야 의원들의 대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선포 직후 1시간 만에 100여 명이 본회의장에 집결했다. 일부 의원들은 경찰 저지선을 뚫고 담벼락을 넘어 본회의장에 도착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한동훈 대표가 국회 집결을 지시했으나, 친윤계 의원 50여 명은 추경호 원내대표의 지시로 당사에 모여 있었다.

4일 오전 1시 1분, 재석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에서는 18명의 의원만이 본회의에 참석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에 들어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우 의장은 계엄 해제안을 그대로 상정해 의결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국회에 참석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은 추 대표의 행위에 대해 "공범이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4일 오전 4시 26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벽이라 국무위원들이 도착하지 못해 의결정족수가 충족되지 않았다”며 지연을 시도했다. 비상 계엄이 선포된 지 채 6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국무위원들이 모두 부재중이라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5시 3분 국무회의가 열려 계엄이 공식 해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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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는 이번 계엄령이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절차를 여러 측면에서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계엄 선포 시 필수인 국회 통고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사전 국무회의 심의 여부도 불분명했다. 특히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계엄 중에도 국회를 해산하거나 소집을 방해할 권한이 없음에도 군대를 동원해 국회 기능을 막으려 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위헌 행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계엄령이 내란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조계의 의견도 잇따랐다. 여당인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오전 긴급 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의 탈당과 국무위원 전원 사퇴, 국방부 장관 경질을 요구했다. 특히 계엄령 선포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경우, 9월 초 임명 당시부터 계엄령 가능성이 제기됐던 인물이었다는 점이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사태가 지난 9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경고가 현실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대표는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회동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으나, 여권은 이를 허황된 주장이라며 일축했었다. 이로 인해 한동훈 대표는 이례적으로 이재명 대표와 함께 계엄 해제를 위한 초당적 협력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계엄군의 행태도 이례적이었다. 이들은 시민들과의 물리적 충돌을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회 진입 과정에서도 걸어서 이동했고, 시민들과의 몸싸움이 격해질 조짐이 보이자 즉시 물러났다. 실탄 지급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총기를 휴대했으나 위협적인 자세는 취하지 않았다. 계엄 해제 결정 후에는 즉각 철수했으며, 시민들은 철수하는 군인들에게 오히려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한편 이번 계엄령 선포 당시 키르기스스탄 사디르 자파로프 대통령이 방한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 정상이 방문 중인 상황에서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외교적으로도 심각한 결례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1980년 이후 44년 만의 계엄령이자,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이 가결된 사례로 기록됐다. 특히 유례없이 짧은 시간인 2시간 34분 만에 국회에서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면서 일명 ‘3시간 천하’로도 불리고 있다.

시민사회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지자 자정을 넘긴 시각임에도 1천명 이상의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들었다. “계엄해제 독재 타도”를 외치며 국회를 향해 진입하는 계엄군을 저지했고, 국회의 계엄 해제 결정 이후에는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광주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의 기억이 되살아났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비상계엄은 광주시민들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며 “도대체 누가 반국가 세력이라는 것이냐”고 분노했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 5·18민주광장 집결을 호소했다.

해외 언론들도 이번 사태를 긴급 타전했다. 주요 외신들은 “한국 대통령의 충격적인 계엄령 선포와 실패”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이례적 사태라고 평가했다. 일부 언론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계엄령을 언급하며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보도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탄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이번 사태는 정치적 자살행위”라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계엄 선포 과정의 위헌성이 명백하고, 군대를 동원해 입법부를 제압하려 했다는 점에서 탄핵 소추의 근거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낸 동시에, 그 회복력도 보여줬다는 평가다. 한 정치학자는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제압하려 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도전이었다”면서도 “국회와 시민사회가 신속하게 대응해 위기를 극복한 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남긴 상처는 쉽게 아물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회를 ‘범죄자 집단’으로 규정하고, 군대를 동원해 입법부를 제압하려 했다는 점에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근간이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한 헌법학자는 “이제 계엄령의 요건과 절차를 더욱 엄격히 하는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며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