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이 농민회의 비판적 현수막을 철거하면서 지역 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역 농업 정책의 방향과 행정의 대응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6월 25일이다. 이날 영암군농민회는 “농민들은 허리 휘는데 영암은 축제판! 우승희 군수 규탄한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시종, 신북, 금정 지역에 게시했다. 그러나 이 현수막은 게시 직후 철거됐다.

영암군농민회 권혁주 사무국장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6월 25일에 현수막을 게시했는데 바로 그날 철거됐어요. 도시디자인과 경관팀에 연락해 주무관과 통화했더니, 우승희 군수 규탄 문구가 미관상 문제가 된다며 내용 때문에 뗐다고 하더군요. 이건 불법 현수막 문제가 아니라 내용 문제라는 거죠. 군수 호위무사도 아닌데 이해가 안 됩니다.”

권 사무국장의 항의 후 현수막은 같은 날 오후 4시경 재게시됐다. 그러나 다음날인 26일, 농민회의 현수막은 다시 철거됐다. 이에 대해 군청은 입장을 변경해 ‘불법 현수막 단속’을 이유로 들었다.

영암군의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농민회 현수막 철거 이후 영암 관내의 다른 불법 현수막들도 일괄적으로 철거되기 시작했다. 이는 농민회 현수막만을 선별적으로 철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영암군의 대응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농민회는 기존 현수막이 철거된 후, 6월 26일 군청 앞에 집회 신고를 하고 새로운 현수막을 게시했다. 이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이었다.

권혁주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6일 오후 4시 30분경 군청에 들어가면서 담당자에게 집회 신고가 되어 있으니 현수막을 철거하지 말라고 요청했습니다. 오후 5시까지 현수막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다음 날 아침 확인해 보니 현수막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는 영암군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게시된 현수막마저 임의로 철거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농민회는 이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간주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농업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영암군은 무기질 비료 보조금을 전년 대비 75% 이상 대폭 삭감했다. 영암군농민회에 따르면, 평균 비료 사용량의 95%, 최근 3년간 비료값 인상분의 80%를 보조하던 기존 방침에서 2년 평균 사용량의 42.5%, 작년 4분기 가격 대비 인상분 80% 보조로 급격히 축소되어, 보조금이 작년의 4분의 1 수준 이하로 감소했다.


반면, 농민회는 영암군이 농업 예산은 삭감하면서 축제 예산은 유지하거나 증가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권혁주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화관광과 예산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왜 다른 곳에는 예산을 풍족하게 쓰면서 농업 분야에는 이렇게 인색한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죠.”

영암군은 최근 ‘영암 농정대전환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억대농부 500명, 청년농 1000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농민회는 이러한 계획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권 사무국장은 “영암군은 억대농부 육성 등 화려한 구호만 내세울 뿐, 정작 비료 보조금이 대폭 삭감된 사실은 홍보하지 않고 있다”며 “예산이 없으면 농민들에게 사실대로 알리고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우승희 군수의 항소심 공판도 주목받고 있다. 6월 27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에서 검찰은 우 군수에게 1심과 동일한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선출직 공무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위를 잃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수에 대한 비판적 현수막이 등장하고 이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재판을 앞두고 지역 여론 관리에 민감해진 군청이 과도하게 대응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재판과 현수막 철거 사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 지난 5월 14일 영암군농민회는 영암군청 앞에서 무기질 비료 보조금 대폭 삭감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