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지역’ 자부심이 낳은 구제역 참사…허술한 방역체계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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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지역’ 자부심이 낳은 구제역 참사…허술한 방역체계 드러나
방역규정 유명무실…자가접종 60%, 공무원 입회 없어
영암지역 항체 양성률 92.3%, 전국 평균보다 5% 낮아
확진소 76% 암소…“임신우 백신접종 기피 관행” 지적
한우식당 매출 ‘반토막’…“휴업 수준” 지역상권 직격탄
  • 입력 : 2025. 03.21(금) 13:06
  • 선호성 기자
▲ 구제역 확산으로 비상이 걸린 전남 영암군에서 방역본부 관계자가 소독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영암지역 구제역 항체 양성률은 92.3%로 전국 평균(97.3%)보다 현저히 낮아 허술한 방역체계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사진=연합뉴스]

“매년 구제역 백신접종 공무원이 입회한다?”

지난 13일 영암 도포면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불과 일주일 만에 영암에서만 무려 11곳 농가로 확산되며 ‘청정지역’이라는 전남의 자부심을 무너뜨렸다. 그 이면에는 규정은 있으나 지켜지지 않은 방역 체계와 안일한 대응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정지역 방역 안일함 자인한 방역당국


박현식 전남도 농축산식품국장은 “지금까지 전남이 청정지역이다 보니 백신 접종이 약해지는 등 방역이 조금 소홀해져 백신 효과가 다소 떨어진 틈을 타고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나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는 방역당국도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안이한 방역 의식에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영암지역 소 구제역 항체 양성률이 92.3%로, 전국 평균 97.3%와 전남 평균 96.5%보다 크게 낮았다는 사실이다. 항체 형성률이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백신 접종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전남 첫 구제역의 역학조사 결과, 확진 판정 약 10일 전인 3월 초부터 증상 발현이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구제역은 잠복기에도 비말을 통해 가축 간 감염이 가능할 정도로 높은 전파력을 지니고 있어 신고 지연이 확산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영암 지역 한 축산농가는 “농장주들이 구제역을 의심하면서도 ‘설마 우리 지역에서 발생하겠어?’ 하는 생각으로 신고를 미루는 경우가 있다”고 증언했다. 이는 ‘청정지역’이라는 자신감이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다.


백신접종 규정은 있으나 현장선 지켜지지 않아


정부의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르면 ‘백신은 백신 공급반(공무원 등)을 통해 공급해 농가가 자가접종을 실시토록하고 확인(입회)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이 규정은 현장에서 거의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한우 사육 농가 농민은 “7년째 한우를 사육 중이지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할 때 공무원이 입회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며 “공무원이 입회해야 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전남지역 구제역 발생 농가 중 60%가 농장주 스스로 백신 접종을 한 농가인 것으로 파악됐다. 최초 발생농장을 포함한 3·5·6·8차 발생 농가가 자가접종 농가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수의사는 “구제역 백신 접종 매뉴얼은 백신의 보관 방법, 주입 위치, 주입법, 투여 후 기록 법 등 자세히 적혀 있지만, 현장에서는 백신을 상온에 보관하거나 주입하지도 않은 채 주사기를 빼거나 한 개의 주사기를 여러번 사용하는 경우 등 매뉴얼 미준수 실태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백신 방법이 잘못되면 항체 형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예산과 인력 부족…공수의 배치 한계


전남도가 구제역 백신 접종 사업비로 확보한 예산은 28억 400만 원으로, 전남지역에 배치된 공수의사 120명이 46만 7000마리에 직접 투여할 수 있는 금액이다. 산술적으로만 따져봤을 때 전남지역 사육 한우가 63만 8000마리에 달한 점을 고려하면 나머지(27%)는 공수의 없이 직접 접종해야 하는 실정이다.

전남도 방역당국 관계자는 “여건상 공무원이 접종 시에 입회하기란 불가능하다”며 “공병 확인 등으로 접종확인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공수의는 “10명의 공수의가 10일 정도면 집중 접종을 통해 5만 두 정도는 접종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농가 현실과 방역 규정 간 괴리는 방역 시스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규정은 있으나 그것을 따를 인력과 예산이 없다면 사실상 규정만 존재하는 형식적인 방역 체계라는 지적이다.


의문의 ‘암소 감염 집중’…백신 기피 관행 드러나


주목할 만한 점은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소 54마리 중 41마리(76%)가 암소, 13마리가 수소라는 사실이다. 12개 감염 농가 중 8곳에서는 암소만 감염됐다.

축산업계에서는 ‘암소 백신 기피설’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농가에서는 “백신을 접종하면 암소의 경우 유산확률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어서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임신 말기에 백신을 잘못 투여했다간 100% 조산 또는 사산될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수정 후 임신 5개월 이상 지난 암소는 ‘유예축’으로 분류해 출산 후 수시 접종하다 보니 공백기가 생기고, 백신 면역이 떨어진 시점과 겹칠 경우 집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방역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또 다른 사례로 볼 수 있다.


지역 상권까지 ‘유령도시’…“코로나가 돌아왔다”


구제역은 축산농가뿐 아니라 지역 상권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확산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거리두기를 실시하며 영암 읍내 상권이 얼어붙은 것이다.

영암군 내 한우 식육식당들은 구제역 발생 이후 소고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매출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덩달아 지역 상권 식당가 업주들도 “월요일(17일)부터 갑자기 사람이 없다”며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다.

확산 방지를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지역민은 최소 5,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실제로 영암 읍내는 점심시간에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밤 8시만 되면 읍내가 코로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주민들은 전했다.

일부 소상공인은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올 한 해를 비관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방 군소도시 음식점은 지역축제 기간이 대목인데 꽃이 진 이후로 미뤄진 행사에 얼마나 찾아올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청정지역의 민낯 드러나다…“예견된 재앙”


이번 구제역 사태는 ‘청정지역’이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진 전남 방역체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자가접종 농가가 60%에 달하는 상황에서 규정대로 공무원 입회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백신 접종률도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특히 영암 지역의 항체 양성률은 92.3%로 전국 평균(97.3%)보다 현저히 낮았다.

한 축산농가는 “전남도가 그동안 ‘우리는 청정지역’이라며 구제역 방역에 상당히 자신 있어 했지만, 실제로 일부 농가들은 느슨하게 대응하고 당국의 관리감독도 부실했다”며 “이번 사태는 예견된 재앙이었다”고 꼬집었다.

청정지역이라는 자부심이 방역에 대한 안일한 태도로 이어진 결과, 방역 당국은 물론 일부 농가들까지 안심하면서 감염 확산 가능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결국 규정은 있으나 지켜지지 않고, 예산과 인력은 부족한 상황에서 백신접종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난 15일 긴급방역대책 점검 영상회의에서 “방역수칙 매뉴얼화를 통해 체계적 방역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의 방역 체계가 느슨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청정지역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방역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백신접종 관리감독 강화, 적정 예산과 인력 확보, 축산농가의 방역의식 제고가 없다면 다음 구제역 발생도 막을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키워드 : 구제역 | 방역체계 | 영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