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에서 한라까지

HOME > 열린 窓 > 칼럼/기고
유달에서 한라까지
  • 입력 : 2025. 03.07(금) 10:54
  • 영암열린신문
전동호 전라남도 前건설교통국장

제주 카페리, 목포항 국제여객터미널이다. 오전 1시 출발 ‘퀸제누비아호’에 올랐다. 강한 낮 바람이 앞바다까지 풍랑주의보를 만들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고 한다. 진도 조도 맹골수도를 지나 제주항으로 직행한다. 5시 45분 도착 예정이다. 아침은 선상 컵라면과 김밥, 하선하자마자 한라산 성판악으로, 백록담에 올라 반대편 관음사로 내려오는 18.3㎞ 7시간여, 무박 이일 일정이다.

퀸제누비아호는 길이 170m, 27,391톤 규모다. 여객 정원 1,284명에, 요금은 이코너미 32~VIP 500천 원으로 다양하다. 총 7층 구조로 식당, 편의점, 노래방과 야외 테라스 등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시설은 대부분 갖추었다. 작은 크루즈로 보면 된다. 오랜 꿈을 실현 시키는 순간이다. 이른 유달산에서 뱃고동 울리던 그 배를 볼 때마다, 나도 한 번 타봐야지 했었다. 오전 8시 45분에도 출발한다.

목포항을 떠난 지 1시간여지만 잠을 이룰 수 없다. 전화 소음은 자제를 요청했지만, 코골이는 어찌할 수가 없다. 전화기 충전 객실 콘세트도 안 된다.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 깜깜한 바다를 가르는 물소리와 차가운 바람뿐, 무섭기까지 하다. 중간층 휴게실로 와보니, 나뿐만이 아니다. 아마도 비슷한 고충이었을 게다. 승선감은 괜찮다. 엔진 소리와 작은 떨림뿐이다. 큰 진동이 없으니, 뱃멀미도 없다.

한라산국립공윈에서 4시 58분 문자가 왔다. ‘탐방객 안전을 위해 길 트기 작업 및 시설물 점검으로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만 가능합니다. 실시간 사항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럴 수가? 미리미리 알려줬어야지. 064-713-9953 전화는 근무시간 전이라며 안 받는다. 어떻게 오를지 결정해야 한다. 무작정 계획대로 할 건지? 다른 코스로 변경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제주항 여객터미널 4부두에 도착했다. 택시를 찾았다. 어디든 소식통이기 때문이다. ‘영실 어리목은 뚫렸수까?’에 ‘뚫렸던 해라’는 목소리다. 성판악 코스는 20여 일 전부터 눈이 너무 많아 뚫질 못하고 있단다. 예전에는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고도 한다. 진즉 알게 했더라면 ‘썩을 놈들이’ 소리가 나온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가 없다. 정상은 먼발치로, 윗세오름을 타기로 했다.

영실(靈室)에서 어리목으로 가는 탐방로다. 아직은 캄캄한 밤이다. 도시의 불빛과 1100도로를 따라 1시간여를 가야 한다. 한라산 중산간을 지나 서귀포시로 넘어간다. 상고대, 눈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일출 전 산행이다. 희미한 미지의 세상, 이때가 좋다. 날이 새면 다 드러나 신비로움이 사라지고 만다. 무엇이 보일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쌓인 눈이 바람을 따라 앞장서 날아간다.

준이와 식이랑 우리 말고도 여럿이 대기 중이다. ‘오백장군과 까마귀’에서 스패츠와 아이젠을 사 착용하고 영실로 들어선다. 해발 1,700m 윗세오름까지 4.7㎞, 970m 어리목 주차장까지 4.7㎞, 총 9.4㎞를 시작한다. 붉게 쭉 뻗은 소나무 종류가 뭐지? 좋다. ‘한라산 까마귀는 독수리 같다’에 ‘까까’라며, 나는 까마귀라고 한다. 오를수록 나무들이 주목(눈향나무?), 참나무, 잡목으로 바뀌어 간다.

키를 낮추며 바람에 적응하는 생존전략이다. 병풍바위 푯말이 눈 속이다. 저기가 직벽, 세워진 병풍처럼 보인다. ‘그림이네, 완전 예술이네’ 소리가 난다. 죽어 천년 주목도 우뚝하다. 윗세족은오름이 어딘지 모르게, 새들도 날지 않은 눈보라 속으로 오르고 또 걸었다. 남벽과 돈내코 분기점은 찾을 수 없어도, 지붕까지 묻힌 윗세오름대피소가 보인다. 설국이다. 천상의 나라 여기, 천국이 따로 없다.

이제부턴 어리목으로 가는 내리막이다. 고개를 들 수 없고 모자를 날리는 눈바람에도 다들 총알이다. 눈이 만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의 풍광을 담으며 제주휘파람새, 섬사철란, 바위수국, 졸참나무 6형제, 곤충과 양서파충류 등 고도에 따라 다양한 생물이 산다는 표지도 만났다. 만세동산과 사제비동산을 지나, 드디어 어리목이다. 10시 50분 도착, 3시간 7분 일만 칠천 보를 걸었다.

거친 날씨에 땀을 내긴 했어도 개운하다. 좀 서운하기도 하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백록담에 있어야 한다. 아마도 더 사나운 바람 앞에 휘청이고 있을 것이다. 그 한계를 염려한 통제에 감사드린다. 막내와 못한 추억 만들기도 아쉽다. 내게는 평생 예쁜 아이지만 여인이 다 된 이유다. 살아생전에 다시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꼭 하고 싶은 일이다. 겨울 한라산과 여름 백두산을 기대한다.

한라산(漢拏山)은 높은 산이란 뜻이다. ‘운한(은하수, 높은 하늘)을 당기다(拏)’는 해발 1,947m로 남에서는 가장 높지만, 북녘까지는 백두산 2,744m 등 개마고원 일대 60여 곳 다음이다. 국립공원,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람사르습지를 포함한 133㎢ 복합 화산체의 하나다. 과학기술은 그 특징을 사화산, 휴화산, 활화산으로 점차 바뀌게 했지만 언제 폭발할진 아직 모른다.

제주도는 26만 년 전 시작해 2600년 전 마지막 돌오름까지, 땅속 현무암질 마그마가 방패를 엎어 놓은 것처럼 얇고 넓게 분출한 순상화산(楯狀火山)과 백록담같이 우뚝 솟은 종상화산(鐘狀火山)으로 이루어졌다. 오름 또한 화산체의 하나인 산봉우리로 말굽형, 원추형, 원형, 복합형 등 368곳이나 된다. 백록담은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연못이라지만, 여름 장마 때를 제외하곤 드러난 경우가 많다.

한라산에서 모두는 한마음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엇갈릴 때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먼저 가세요’라며 서로를 염려했다. 다들 돌아가더라도 산에서처럼 이해와 배려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점심을 하러 간다. 전투 식량에서 한라산소주, 한치물회, 갈치조림과 고등어구이로 바뀌었다. 틀어진 계획이 만든 성찬이다. 약간의 취기와 피로를 씻는 용두암해수랜드도 좋았다.

오후 4시 45분 출항, 5시간 배를 또 타야 하는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 7부두다. 완도행이 좀 먼저인지라, 발 디딜 틈이 없다. 잠시 ‘이삭 농수산’에 들려야 했다. 천혜향, 우도 땅콩, 캐러멜, 감귤 젤리와 칩, 한라봉 과즐, 천혜향 주스까지 맛있는 제주산만 골랐다며 ‘다들 우리 아방보다 잘 생겼네’ 소리를 들었다. 목상고 앞 ‘고희숙미용실’이층집 동생, 제주 토박이 ‘고양부 삼성혈’ 후손이시다.

농수산물 부가가치는 소포장 가공되어야만 높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우리 지역도 양파, 고구마, 대봉, 김, 전복, 소금 등 많기도 한데? 연구개발과 마케팅 지원이 더 되어야 한다. 이렇게 느끼고 배운 제주를 다음 겨울에 또, 아니 눈 속의 만세동산 진달래가 필 때 다시 오자고도 한다.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여정이 될 거라 믿는다.

영암열린신문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