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하 전남보건환경연구원 대기관리기술사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은 먹는 것에 진심이다. 아마 세계를 통틀어 ‘먹부심’ 만큼은 최고일 것이다. 이따금 사상초유의 가뭄과 홍수로 곡물 가격이 치솟을 것이란 우려 섞인 뉴스에 아프리카 어딘가 있을 난민을 위한 악어의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진심으로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동네 마트에 가면 지난 폭우로 가격이 상당히 오르긴 했지만 싱싱한 채소가 있고, 재배지 북상으로 맛이 예전만 하지 않은 사과와 배를 대신 할 망고, 멜론이 있다. 식료품 매장에는 먹을 것이 넘쳐 난다.

비록 우리 집 냉장고에는 물러 터져 가는 토마토, 익을 대로 익어버린 아보카도, 화석이 되어버린 소고기 등심덩이, 기억나지도 않는 언젠가 지인이 선물한 제주옥돔이 냉동실에 있을 테지만, 이번 주말에 먹을 생각은 없다.

현재 인류는 80억 명을 향한 무한질주를 하고 있다. 그동안 보건 위생교육, 의료기술 발달의 기여가 있었지만 20세기 초 인류역사에 인공적인 질소의 고정, 즉 질소비료 발명은 인구폭발의 ‘치트키’라고 할만하다. 질소비료가 나오기 전까지 농업은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농토에서의 연작은 불가피 했고 땅의 ‘지력’이 다하면 농사지을 땅을 찾아 숲의 나무를 베거나 불을 질러 새로운 농지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료를 발명한 인간은 더 이상 지력이 다한 땅에서 끙끙대거나 새 농지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땅에 뿌리기만 하면 수확량을 배로 늘리는 마법의 묘약을 손에 쥐었다. 전 세계 60년대 초 경작지 1㏊당 사용된 질소비료는 평균 8㎏이었는데 2019년에는 70㎏으로 늘어났고 심지어 우리나라는 134㎏이 뿌려졌다.

그런데 이 묘약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과잉으로 뿌려진 질소는 지하수로 흘러들거나 암모니아나 아산화질소(N2O)가 돼 공기 중으로 날아간다. 아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CO2)와 메탄(CH4)에 이어 셋째 가는 온실가스다. 아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에 비해 발생량이 적어 덜 알려졌지만, 온난화를 일으키는 능력인 지구온난화지수(GWP)가 단연 으뜸이다. 즉 이산화탄소가 GWP 1이라고 하면 아산화질소는 273배의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인공질소 비료를 만들 때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질소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NH4)를 만들기 위해 질소와 수소를 400~500℃, 압력을 150~300기압 상태로 올려야 한다. 사람은 평상시 25℃, 1기압 상태에서 살고 있는데 150기압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물속을 맨몸으로 1500m 들어가면 된다. 아마 50m도 못 가 수압 때문에 기절하겠지만, 암모니아 합성에 고에너지가 필요하고, 온실가스도 다량 배출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질소비료의 발명은 곡물 생산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고, 남아도는 농산물은 가축의 사료로 쓸 수 있게 됐다. 1970년대 한우의 평균 체중은 350㎏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700㎏을 넘어섰다. 50년 만에 체중이 2배로 늘고 더불어 품질은 8배 좋아진 것이다. 잘 먹는 소가 뚱뚱해지고 지방이 많아진 것은 당연하고, 맛있는 고기 한 점은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온다.

더이상 온실가스 배출이 다국적 기업마크가 새겨진 대형공장들, 석탄화력발전소, 도로 위 넘쳐나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농작물이 피해를 입고 가축들은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이상기후로 식료품 가격은 비상이라는 피해자 코스프레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주말마다 마트에서 장보고, 소소한 야식을 즐기고 특별한 날 식구들과 고기 구워먹는 평범한 우리 집 밥상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킬 수 있다.

오늘 내가 먹은 밥상에는 탄소발자국이 찍혀 있다.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먹거리를 기를 때 전 세계 연간 온실가스의 20%가 배출된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고 관심을 두려고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실제적으로 우리가 음식을 먹고 식재료를 고르는 일은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일이다. 먹는 것을 기르는 과정을 진심으로 관심있게 보자. 이제 ‘먹부심’, ‘먹방’과는 결별이다. 과도한 장보기를 피하고, 냉장고를 비우고 음식쓰레기를 줄이자. 기후위기 시대 우리 가족의 밥상을 탄소제로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