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정 전남도 안전정책과장

현대사회의 일상을 영위하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중의 하나는 이동 수단이다. “새로운 시대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이다.”라는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의 명언처럼 세상을 읽는 눈과 정보도 빨라야 하지만 그만큼 이동의 속도도 빨라야 한다.

날이 갈수록 차량의 성능뿐만 아니라 도로 환경도 좋아져 이동성이 용이해지고 안전장치도 늘어난 반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질병을 제외한 우리나라 안전사고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자살 다음으로 교통사고가 사망자가 많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2,916명으로, 처음으로 2,000명대에 진입했다. 5년 전인 2016년 4,292명보다는 32.4%가 줄어들었지만, OECD 가입 38개국 중 교통사고 사망자 통계 비교가 가능한 36개국 가운데 27위이다.

전라남도의 경우 2018년 ‘교통사고 사망자 절반줄이기’를 도정 역점시책으로 추진하면서, 시책 추진 전인 2017년 387명에서 2021년 말 기준 256명으로 34%를 감축했다. 그러나 인구 1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42명으로 전국 0.54명에 비해 2.6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0위의 경제강국, 세계 7대 우주강국,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기업 보유 등 선진 대열에 있는 경제·사회 분야와 반대로 유독 교통사고 분야에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보여준 ‘K속도’, 일명 ‘빨리빨리’ 문화가 교통분야에도 적용돼‘안전’보다 ‘빠름’을 우선시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교통정책의 전환은 2019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2021년 도시부 제한속도 5030정책과 도로에서 보행자에게 통행우선권을 부여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지난 7월 12일자로 시행된 것이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이 1980~1990년대에 이미 강력한 속도관리 정책을 도입하고 보행자 우선의 교통정책을 펼친 것에 비하면 우리는 30년가량 늦게 도입하면서도 사람과 물자의 이동 효율에 치중한 나머지 안전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게 다뤄진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적 교통안전 트렌드와 정부 정책이 맞춰지고 전라남도의 교통정책 또한 분주한 변화를 시작했다.

초고령사회의 중심에 있는 만큼 어르신들을 위한 ‘마을주민 보호구간’과 ‘노인보호구역’을 2026년까지 2배 이상 지정해 교통사고 사망자를 감축시킬 방침이다.

보호구간 지정 이외에도 보행속도가 느린 어린이, 노인, 장애인을 위한 ‘횡단보도 보행신호 자동연장 시스템’, ‘마을 입구 사고위험정보 디스플레이 장치’ 등 AIoT(사물지능융합기술)를 접목한 첨단 안전 시설물도 함께 설치할 계획이다.

또한 유동인구와 관광객의 발길이 많음에도 보·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구역에 보행로, 안전 휀스, 벤치 등을 설치해 안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도모할 보행환경 개선사업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도 차량이 아닌 보행자에게 통행우선권이 있고, 도로는 차량을 위한 공간이 아닌 보행자와 서로 상호 작용하는 공유 공간임을 인지시키는 맞춤형 교통안전문화 운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찾아가는 어르신 남도안전학당, 어린이 교통안전 체험관 운영과 어르신 보행안전, 이륜차 등 다양한 주제별 홍보영상 제작 및 배포가 대표적 교육·홍보 사업이다.

그간의 교통정책이 단속과 시설개선에 집중해 사고를 줄여나갔다면, 이제는 민·관·경 모두가 함께하는 안전문화 확산으로 교통인식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꾀해야 할 때이다.

다만,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교통 문화 확산이 이동성과 경제성의 효율 측면에서 운전자들의 민원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재 사고와 범죄 사건보다 10배 이상 사망자가 많은 교통사고는 심각한 사회재난으로 다뤄져야 한다.

느리더라도 꾸준한 안전문화 개선으로 변화하는 선진 교통안전 정책이 모두의 공감을 얻으며 안전한 전남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