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란 전라남도청소년미래재단 원장

우리는 작년 한 해 ‘오징어게임’을 보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부터 구슬치기, 오징어게임놀이 등 우리 기성세대를 유년 시절 추억으로 이끌게 했다.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등 온라인, 스마트폰 게임과 커뮤니티로 비대면 환경에 너무 익숙한 지금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추억할까. 이러한 질문은 우리 기성세대의 감성에서 비롯된 기우일지 모른다.

여러 영상 매체 속에서 자란 오늘날의 청소년은, 과거에 비해 매우 감각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하며 재미를 추구하고, 라이브방송 등을 통해 자신의 참여로부터 크리에이터, 아이돌 등의 즉각적인 반응과 함께 소통하기도 한다.

꿈 실현 위한 정책 우선

지금의 청소년은 과거의 우리보다 분명 풍족한 물질적 환경을 누리고 있음에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더욱이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 10대, 20대의 자살 연령별 증가율은 그 전년도에 비해 9.4%, 12.8%로 크게 늘어났다.

학교를 이탈하는 청소년들이 매년 6만∼7만 명 정도이고, 가정에서의 가출은 탈선과 청소년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아를 상실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청소년들이 길거리를 배회하며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방황하는 것과 동일하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청소년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 문화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이들의 꿈과 자아실현을 위한 청소년 정책과 지원이 우선시 돼야 한다.

2019년 12월 선거권 연령이 만 19세에서 18세로 바뀌었다. 그 결과 청소년의 정치 참여 저변은 넓어졌지만, 청소년이 시민으로 대접받고 있는지 물었을 때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몫과 권리’를 지닌 진정한 시민으로 대하고 있는가. 그저 시간이 흘러 일정한 나이가 돼야 형식적으로 시민에 편입시킬 뿐, 청소년의 감정이나 의견을 외면하고 무시한다.

청소년은 지금 시민과 비시민을 나누는 경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지도 모른다. 청소년이 시민다운 시민으로 대접받게 하려면 청소년의 일상, 정치, 학교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청소년의 자각을 위해 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시민으로서의 ‘몫과 권리’를 일깨워 줘야 한다. 그리고 과연 우리 사회가 청소년 시민을 맞이할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는지 각성해야 한다.

지난 1월 범 청소년계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맞아 청소년정책 비전 선포대회를 개최하고 ‘청소년 시민권리 강화, 공정한 성장기회 보장, 위기사각지대 제로화, 청소년정책 공공성 강화’를 정책 아젠다로 제안했다. 그러나 각 당의 후보와 정책 담당자들은 이를 적극 반영하겠다 약속했지만, 막상 후보 공약이나 공보물에서 청소년정책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동과 청년 정책에 비해 청소년은 여전히 주요 정책의 한축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공약은 발표되지만 청소년 정책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반영하기에 급급하며, 청소년을 위한,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실제로 9~24세 청소년 인구는 830만명, 전체 인구의 16%에 달한다. 그렇지만 정책 주관 부처인 여성가족부 청소년 예산은 불과 1,283억원으로 올 한해 정부 전체 예산의 0.0002%에 불과하다. 이렇게 전체 비율에 비해 부족한 예산은 주로 학교밖 청소년을 위한 돌봄과 위기 청소년 안전망사업 등 위기청소년과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지원 위주로 이뤄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많은 지원과 예산을 바탕으로 청소년 정책은 ‘보호, 치료, 상담에서, 청소년의 꿈과 끼를 설계하고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년정책 수요자의 요구와 지역 현실에 맞는 청소년정책 수립과 실행이 필요하다. 단순히 청소년 정책이 발굴과 제안에 그치지 않고, 지방의회와 행정기구의 주요 정책으로 반영돼야 할 것이며, 청소년정책 실행에 대한 지원과 정책사업 성과관리 등을 통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정과제 수립에 반영돼야

대한민국의 문화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21세기에, 청소년의 무한한 잠재능력은 최대한 발휘되고 개발해야 할 때임에도 아직도 우리의 청소년 정책은 소극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청소년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고, 역량을 강화시키는 건 기성세대의 몫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고 선거 이후 국정과제 수립 과정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선거나 지방 정책의 논의와 같은 거대담론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청소년정책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반영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