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1년 반 넘게 광주와 영암을 출퇴근 중인 필자는 잠자는 시간과 휴무일을 제외하고선 영암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이 때문에 영암에서 끼니 해결을 다 하는 편이다. 점심은 물론 업무 특성상 야근이 잦은 탓에 저녁 또한 주로 회사 근처 식당에서 해결하는 편이지만, 늦은 시각까지 영업을 하는 식당이 드물고, 있다 하더라도 좁은 메뉴 선택지에 매번 비슷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에 필자는 다년간의 자취 경력에도 불구하고 일천한 요리 경험을 더해 직접 차려 먹는 식으로 저녁 끼니를 해결해 나가고는 있지만, 미숙한 요리 솜씨로 인해 가끔 처치 곤란한 실패의 쓴맛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 때문에 최근 식자재와 별개로 어떤 조미료를 얼마만큼 사용해야만 실패하지 않는 요리를 완성할 수 있는지, 이 부분에 지대한(?)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음식의 맛을 단숨에 끌어 올릴 치트키와도 같은 각종 조미료에 관한 관심도 높아져 이참에 조미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살펴보게 됐다.

조미료, 너의 정체는 무엇이더냐

일반적으로 조미료란 음식을 만들 때 주재료에 알맞게 첨가해서 음식의 맛을 돋우는 물질을 말한다. 음식의 맛과 향, 색을 보완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향신료(Spice)와는 엄밀히 말해 다른 것으로 구분되지만 둘의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크게 구분되지는 않고 뭉뚱그려 양념(Seasoning, Sauce)이라고도 부른다.

일단 맛에는 기본적으로 6가지가 있다. 행복한 단맛, 생존을 위한 짠맛, 침이 고이는 신맛, 어른의 맛인 쓴맛, 고향의 맛인 감칠맛, 참기름이나 올리브의 지방맛. 이러한 맛을 내는 것을 조미료로 분류하는데 여기에 매운맛과 떫은맛까지 내는 것을 조미료에 포함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매운맛과 떫은맛은 맛이 아니라 통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금, 설탕, 고춧가루, 간장, 된장, 고추장, 식초, 맛술, 기름 등이 조미료로 이용된다. 고기 요리 등 특수한 목적으로는 커피나 사이다도 조미료로 쓰이기도 한다. 쓴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해 자주 사용되지는 않으나 소량의 쓴맛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 가끔 커피 등을 사용해 쓴맛을 첨가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쓴맛의 기호품이 커피와 맥주다. (어른의 맛, 이거 못 먹으면 아직 어른 아닌 걸로) 특히 맥주는 후라이드 치킨 등 기름진 튀김요리를 먹을 때 느끼한 맛을 가시게 하기에 환상의 궁합인 셈이다. (괜히 치맥이겠는가) 그리고 대표적인 쓴맛의 조미료가 고수다. 기름진 중국요리와 궁합이 좋으며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신채이자 조미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MSG는 억울하다

조미료에는 자연에서 나는 동식물을 사용한 천연조미료와 인공적으로 만든 화학조미료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조미료라는 용어를 쓸 때는 더욱 좁게 미원으로 대표되는 MSG 제품만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식당에서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거나 손님이 조미료를 적게 넣어달라는 것은 보통 미원을 얘기하는 것이다. 정말 양념을 덜 넣어달라고 요구하려면 조미료를 적게 넣어달라고 하지 않고 덜 짜게, 덜 맵게, 혹은 좀 싱겁게 해달라고 부탁해야 알아듣는다.

일례로 예전에 음식점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 예능프로에서, ‘저희집은 조미료를 쓰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는 음식점을 관찰한 적이 있다. 실제 조리 방법을 살펴보니 MSG가 들어가는 치킨스톡, 사골분말, 맛소금 등을 넣는 것이 발견됐다. 당시 사장은 “미원, 다시다를 못 넣으니까 맛소금을 넣는다”고 말했는데, 맛소금은 단순 소금이 아니라 소금과 MSG로 만든 조미료이다. 또 MSG는 사골 분말에도 첨가되며, 치킨스톡에도 당연하다시피 들어간다. 이 사례 그대로 미원과 다시다만 MSG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소금, 설탕 등의 천연 조미료가 아닌 MSG, 아스파탐 등 인공 합성 조미료에 대해서는 항상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심이 따라붙으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독극물 마냥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실 1968년 초, MSG를 대량으로 섭취하고 나서 10~20분이 지나면 후두부의 작열감, 불쾌감, 근육경련,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난다는 보고가 미국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확대된 사건과 무관치 않다. 주로 중국식당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이를 중국음식점 증후군(CRS, Chinese restaurant syndrome; Kwork’s diseases)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의 FDA, UN의 식량농업기구(FAO) 등에서는 한때 일일섭취허용량을 제정하고 신생아용 음식에 첨가하지 못하도록 규정했으며, 고혈압이나 울혈성 심부전 환자, 알레르기 환자에게도 섭취 제한을 권고했었다.

그러나 이후의 제대로 된 연구들에서 CRS의 원인이 MSG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MSG의 일일 섭취허용량이나 섭취제한을 폐기한 상태다. 우리나라에서도 식약청(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여러 가지 홍보자료를 통해 무해성을 밝히며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는 발표를 했다.

참고로 MSG를 두고 맛소금의 이니셜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진짜로 오해하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이는 Mono + Sodium + Glutamate, 즉, 글루탐산에 나트륨 이온이 하나 붙은 것을 뜻한다. 이 글루탐산은 단백질을 이루는 20가지 아미노산 중 하나이자 신경계의 중요한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이다. 글루탐산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이러한 글루탐산과 MSG의 차이는 MSG에 나트륨 이온이 붙어있다는 것인데, 이 나트륨 이온은 용해도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결국 인공 합성 조미료인 MSG에도 나트륨이 포함되어 있기에 다량섭취하면 나트륨 과다의 위험이 있어 좋을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트륨의 질량 비율이 천연 조미료인 소금과 비교해 약 1/3이며 일반적으로 소금보다 적은 양을 써도 충분하므로, 소금은 좀 적게 넣고 MSG를 첨가해 총 나트륨 섭취량을 20~40% 정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 나트륨 섭취 감소에 유용하다는 주장 때문에 재조명을 받고 있으며, 미국국립연구원이나 미국 영양사협회에서도 나트륨 섭취량을 줄이기 위해 MSG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세기의 대결, 조미료 전쟁

MSG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조미료가 바로 미원이다. 다시다와 함께 우리나라 조미료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 미원은 일본에서 최초로 발명된 상품 아지노모토(味の素)를 그대로 베껴 쓴 상품명이다. (맛의 근원을 뜻하기에 미원이라 칭했고, 상표도 복붙 수준)

본래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아지노모토의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그러다 1945년 해방으로 아지노모토가 철수하자 조미료 공급이 수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렴하게 감칠맛을 내기 위한 화학조미료 수요가 컸기에 여전히 많은 양의 아지노모토가 밀수입되거나 심지어 위조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1956년 동아화성공업(사명을 1962년에 미원(주)로 바꾸고 1997년에 대상으로 변경)에서 최초의 한국산 화학조미료인 미원을 출시하면서 한국 화학조미료 시장의 과반을 석권하게 됐다. 1960년대에 이르러 미원의 전성기가 진행되면서 ‘일미’, ‘선미소’, ‘미영’, ‘닭표맛나니’, ‘미풍’ 등 온갖 아류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도전자 중에서도 당시 삼성 계열사인 제일제당이 출시한 미풍의 도전은 거셌다. 1963년 미풍을 생산하던 ‘원형산업’을 인수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으며 마케팅전을 벌이고 1969년에는 아지노모토 기술제휴까지 따내며 조미료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때부터 미원과 제일제당 사이에서는 이른바 세기의 대결로 손꼽히는 조미료 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둘의 경쟁은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진행됐다. 특히 미원과 미풍 간의 사은품 경쟁은 지나치게 과열되는 양상이었기에 급기야 정부까지 나서서 직접 개입하는 사태도 있었다.

1960년대 미원은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서며 국민 조미료로 등극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미원의 광고 모델을 거쳐 갔을 정도였고, 조미료 시장에서 미원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실제 60~70년대 최고의 인기 선물 중 하나로 꼽혀 미원 1kg들이 금색 캔을 상자처럼 포장해 선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미원에게 밀리던 제일제당에게도 기회가 왔다. 쇠고기 다시다의 역주행이었다. 사실 1세대 후발주자로 미풍을 밀던 제일제당은 일찍이 1975년에 ‘천연조미료’란 기치를 내건 ‘쇠고기 다시다’를 출시했었다. 당시엔 역부족이었으나, 1980년대 초반 화학조미료의 유해론이 일면서 상황이 역전돼 천연조미료인 다시다의 판매가 늘었던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쇠고기맛을 손쉽게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며 다시다는 화학조미료 시장을 탈환하기 시작했다.

주력 상품의 매출 하락을 우려하다 대응에 주저하던 미원은 무려 7년 뒤에서야(1982년) 경쟁제품인 ‘맛나’를 내놓으며 다시다에 맞섰다. 제일제당의 다시다에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자 미원은 다시 고두심을 내세운 ‘감치미’를 투입하지만,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김혜자와 유행어 “그래, 이 맛이야”를 내세운 다시다에게 참패하고 만다.

참고로 조미료 역시 세대별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1세대 대표 조미료인 미원과 미풍은 옥수수를 발효한 발효조미료로 95% 이상 MSG로 이루어져 있고, 2세대 대표 조미료인 다시다, 맛나, 감치미 등은 복합조미료로 MSG 함량을 10~20%로 줄이고 쇠고기, 파, 마늘, 양파 등을 혼합했다. 상기와 같이 조미료 1세대에서는 미원이 압도적으로 이겼고 2세대에서는 반대로 다시다가 압도적으로 이겼다.

이후 3세대 조미료로 MSG와 인공합성물을 배제한 자연조미료(산들애, 맛선생 등)가, 4세대 조미료로 인공합성물은 물론 첨가물도 일절 넣지 않은 액상발효조미료(연두 등)가 개발돼 시중에 판매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1세대와 2세대 조미료인 미원과 다시다가 전체 조미료 시장(업소, 가정 포함)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업소용 시장에서는 1세대 조미료가, 가정용 조미료 시장에서는 2세대 조미료가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다.

여담으로 1세대와 2세대에 이은 이 ‘조미료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제일제당의 모기업인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호암자전)에서 “세상에 내 마음대로 안되는게 골프, 자식, 그리고 미원”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치며

이런저런 잡스러운 얘기들을 두서없이 했지만 가장 큰 결론이 남았다. 바로 절대 실패하지 않을 조미료의 조합 비율을 밝힌다. 이름 하 장설파마깨후참. 두문자다. 필자와 같이 요리 경험이 일천한 이들이 절대 실패하지 않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꼭 암기해두어야 할 치트키 명령어 같은 거다. 장(짠맛) 1큰술, 설탕(단맛) 1큰술, 기타 파, 마늘, 깨, 후추, 참기름 아주 조금씩 섞어 넣으면 웬만한 음식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원리는 간단하다. 단짠의 원리다. 단맛은 행복한 맛이고 짠맛은 생존의 맛이라고 했다. 그 둘을 합치면 살아있음에 행복함을 보장받게 된다는 것이다.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명심하자. 약속된 비율을 절대 어기지 말자. 인생 마지막까지 절대 잊어선 안 될 철칙. 바로 과. 유. 불. 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