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미암면 환경갈등, 첫 실질 합의…“소각로 폐쇄·LPG 전환” 제2차 갈등조정협의회서 양측 합의 도출 연료 변경시 ‘비대위 사전협의’ 의무화도 업체 대표 “죄송합니다”…양측 박수로 마무리 과거 약속 파기 전력…이행 여부는 ‘지켜봐야’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12월 26일(금) 12:56

13년간 이어져 온 미암면 환경오염 갈등이 처음으로 실질적인 합의점을 찾았다. 업체 측이 소각로 폐쇄와 LPG 청정 연료 전환을 수용하면서다. 다만 과거 수차례 약속을 파기한 전력이 있는 만큼, 실제 이행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영암군은 지난 23일 군청에서 ‘미암면 대기배출시설 운영 제2차 갈등조정협의회’를 개최했다. 지난 8월 12일 1차 협의회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이날 협의회에는 한국갈등조정가협회 장동혁 사무총장(의장), YK환경 윤○○ 대표와 윤○○ 이사, 미암면 비상대책위원회 이계화 위원장과 최부길 사무국장, 이상근 동신대 환경공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영암군에서는 양동채 환경기후과장, 김경원 환경지도팀장 등이 배석했으며, 미암면 주민들도 방청석을 채웠다.

1차 협의회 이후 주민 측 대표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 이계화 미암면 발전협의회장이 비대위 위원장을, 최부길 전 공해추방대책위원장이 사무국장을 맡았다.


‘소각로’와 ‘연료’,13년 갈등의 핵심

이날 협의회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주민들의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이었던 소각로 문제, 그리고 향후 어떤 연료를 사용할 것인가였다.

그간 YK환경은 폐목재 등을 태우는 소각로와 LPG 보일러를 병행 운영해왔다. 주민들은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악취, 소음으로 “숨을 쉴 수 없다”며 오랜 기간 고통을 호소해왔다.

협의회 초반, 윤○○ 대표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대한민국 법치국가입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피해 없게끔 하면 되는 것이지, 사사건건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재산권 행사에 대한 간섭을 경계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윤○○ 대표는 “주민들이 소각로 때문에 못 살겠다 하니까 소각로 폐지시키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영암군 환경기후과는 “협의회 다음 날인 24일 폐쇄 신고를 접수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며, 업체는 이미 철거 준비에 착수한 상태였다.

연료 문제는 더 복잡했다. 업체 측은 LPG 단독 운영 시 가동률이 60~70%로 떨어진다며 경영 부담을 호소했다. 대안으로 ‘하이신(부생유·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저가 연료)’이라는 대체 연료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 했다.

이에 최부길 사무국장은 “LPG와 하이신 가격은 유가에 연동돼 있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이왕 바꾸면 친환경으로 바꿔야 한다”고 맞섰다.

장동혁 의장이 중재에 나섰다. “업체 경영 상황도 이해해야 하고, 주민 피해도 줄여야 한다. 서로 상생하는 방향을 찾자.”

논의 끝에 양측은 합의점을 찾았다. 장 의장이 정리한 최종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협약 체결 후에는 청정 연료인 LPG를 우선으로 사용하고, 향후 연료별 단가 및 회사 경영 여건에 큰 변화가 발생할 때는 대체 연료를 검토한다. 단, 그때는 비대위와 협의를 한다.”

사실상 LPG 전환을 원칙으로 하되, 경영 악화 시 대체 연료 검토 가능성을 열어두는 내용이다. 다만 일방적 변경은 불가하고, 반드시 주민 측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안전장치를 달았다.

▲ 영암군 미암면 소재 폐기물처리업체에서 배출되는 연기.

“죄송합니다”…박수로 마무리된 13년

합의가 도출되자 양측 모두 그간의 갈등에 대해 사과했다.

최부길 사무국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성처럼 느껴지고, 공무원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업체 측도 마찬가지고요.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는 이어 상생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저도 무화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갈등이 해결되면 업체와 지역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서로 윈윈해서 우리 지역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윤○○ 대표도 화답했다. “오늘 이 자리까지 시끌시끌하게 온 게 죄송합니다. 과거에 어쨌든 간에, 앞으로 신경 써서 잘 진행해 볼게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렇게 하죠. 이 순간 박수 한 번 칩시다.”

회의장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2012년 업체 설립 이후 13년, 수많은 민원과 행정처분, 집회와 대립 끝에 처음으로 양측이 함께 박수를 친 순간이었다.

장동혁 의장은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며 “생활하는 데 힘든 것도, 직원들과 가족 딸린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모두 어려운 일이다. 상생의 차원에서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면 협약 미체결…“지켜봐야”

의미 있는 합의가 도출됐지만, 신중론도 있다.

우선 이날 합의는 구두 합의에 그쳤다. 협의회 말미에 “최종 문건은 어디에서 작업하느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구체적인 서명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행 담보를 위해서는 서면 협약 체결이 필요하다.

다만 이번 합의는 과거의 단순한 구두 약속과는 결이 다르다. 소각로 폐쇄는 행정청에 ‘폐쇄 신고’가 접수되는 절차를 거친다. 한번 폐쇄 신고가 수리되면 해당 시설을 다시 가동하려면 신규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번복이 어렵다.

그럼에도 이 업체에는 ‘약속 파기’ 전력이 있다. 2023년 12월, 박종필 당시 미암면장 주재 간담회에서 윤○○ 대표는 “공장증설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3월에도 주민대표들 앞에서 같은 약속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뒤인 6월, J산업 명의로 공장증설 신고가 제출됐다.

이런 전력 때문에 1차 협의회에서 최부길 당시 위원장은 “사장님 말을 지금에 와서 제가 신뢰를 못해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발포기(스티로폼 생산 기계) 악취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환경기후과 관계자는 “발포기는 방지시설 의무화 대상이 아닌 면제 시설”이라며 “법적 규제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군은 “포집해서 보일러에 넣어 연소시키는 방안”을 권유했으나, 구체적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날 합의가 실제 이행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서면 협약 체결 일정과 소각로 폐쇄 이행 여부가 향후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