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군민이 원하는 건 민원해결사가 아니라 정책전문가” 영암 지방자치 30년 제4부 - 의정을 말하다 ② 선호성·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 2025년 10월 31일(금) 14:28 |
 ▲ 강찬원 영암군의회 의원 |
1995년 6월 27일, 영암군민들이 처음으로 군수를 직접 선출했다. 34년간 중단됐던 지방자치가 완전히 부활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30년. 1960년대, 한때 14만을 넘었던 영암의 인구는 1995년 5만 5천 명까지 감소했다가, 대불산단 활성화에 힘입어 2005년 6만 2천 명에 육박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2025년 현재 다시 5만 명 선까지 내려왔다. 이 인구 곡선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다섯 명의 군수가 여덟 번의 민선 군정을 이끌었다. 대불국가산업단지는 100% 분양됐고, 도로망은 촘촘히 확충됐으며, 지역 농산물은 브랜드화됐다. 하지만 단 한 명의 3선 군수도 나오지 않았고, 군민들의 기대 속에 추진되던 대형 프로젝트들은 좌초했으며, 청년들은 여전히 고향을 떠나갔다. 지방자치 30년. 영암은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놓쳤는가. 어디서 길을 잃었고, 어디서 길을 찾았는가. 본지는 1995년 그날부터 오늘까지, 영암이 걸어온 30년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확인된 사실과 객관적 데이터, 그리고 30년을 관통한 생생한 증언을 통해 영암이 써 내려온 역사를 기록한다. 과거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를 여는 열쇠다. 이것이 본지가 영암 지방자치 30년의 궤적을 되짚는 이유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1995년 6월 27일, 영암의 선택 - 862표가 만든 역사
② 데이터로 본 영암 30년: 양적 성장 속 질적 과제
③ 증언 - 지방자치 30년을 관통한 목소리
④ 의정을 말하다 - 현직 군의원 인터뷰
⑤ 미래를 묻다 - 차기 군수 후보들의 비전
제4부 ‘의정을 말하다’ 첫 번째 주자였던 박종대 의장이 ‘협력의 정치’를 통해 의회와 집행부의 상생을 강조했다면, 두 번째 주자인 강찬원 의원은 ‘의회의 질적 진화’를 몸소 체험한 산증인이다. 4선 의원으로서 영암군의회의 어제와 오늘을 지켜본 그는, 특히 삼호읍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지방자치 30년의 빛과 그림자를 목격했다.
“제가 처음 의회에 들어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군민들의 기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도로 포장해달라, 가로등 세워달라는 생활민원이 대부분이었죠. 지금은 인구소멸 대책, 지역경제 활성화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을 요구합니다.”
강찬원 의원이 본지에 전달한 서면 답변에 담긴 이 한마디는 지방자치 30년이 가져온 변화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30년 전 벼농사와 어업에 의존하던 삼호읍은 이제 영암군 최대 인구를 보유한 산업도시가 되었다. 이 극적인 변화를 최전선에서 지켜본 그의 증언을 통해 영암 의정 30년의 또 다른 단면을 들여다본다.
의회의 진화: “존재 자체가 의미였던 시대는 끝났다”
강찬원 의원이 본 지방자치 30년은 ‘의회 역할의 진화사’다. 1991년 제1대 의회 출범 당시만 해도 지방의회라는 제도 자체가 낯설었다. 많은 군민이 기대와 함께 적지 않은 우려를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의회가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의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강 의원은 이 변화를 세 단계로 구분해 설명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초, 의회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둔 시기다. 30년 만에 부활한 지방자치, 그 상징이 바로 의회였다. 주민들은 도로와 농수로 정비, 상하수도 확충 같은 생활 인프라를 챙겨달라고 요구했고, 무엇보다 군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가 군정을 견제한다는 민주주의 상징성에 큰 의미를 뒀다.
두 번째는 2000년대를 거치며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본연의 기능이 강화된 시기다. 예산을 꼼꼼히 따지고, 집행부의 일방독주를 막는 역할에 충실했다.
세 번째는 현재의 모습이다. 단순한 견제를 넘어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 전문기관’으로 거듭났다. 인구 감소, 농업 위기, 지역경제 활성화, 복지 강화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기를 군민들이 기대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투명성에 대한 요구입니다. 회의록 공개, 주민 공청회, 의정활동 보고를 통해 군민이 직접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열린 의회를 원하고 있죠.”
강 의원의 설명처럼, 이는 단순히 의회만 변한 것이 아니다. 30년간 군민 의식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책 전문가로서의 의회: 현재 진행형 대안들
강찬원 의원은 현재 영암이 직면한 ‘삼중고’ -인구 감소, 지역경제 침체, 농업 위기- 에 대한 의회 차원의 구체적 대응을 소개했다.
농업 분야에서는 쌀값 안정 대책을 마련하고 수매 장려금을 확대했다. 특히 농자재 지원 조례를 개정해 농민들의 경영비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다. 인구 문제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청년 창업 지원에 나섰고, 빈 상가를 채우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관광 인프라 확충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재정 운영의 효율성이다.
“지방교부세가 줄고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낭비 요인을 철저히 점검하고, 불필요한 사업은 과감히 조정해야 합니다. 한정된 재원을 군민 삶에 직결되는 분야에 우선 투입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노력의 한 예가 제8대 후반기 때 있었던 농민 지원 대책이다. 유례없는 긴 장마와 태풍으로 벼 수확률이 30% 이상 감소하자, 의회가 먼저 나섰다. 농·축협장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고, 그 결과를 집행부와 논의해 우선지급금을 6만 1,000원에서 6만 5,000원으로 인상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의회의 본연은 견제와 감시입니다. 하지만 군민을 위해서라면 집행부와도 적극 협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회의 역할이죠.”
 ▲ 지난 2022년 7월에 두 차례에 걸쳐, 농협 및 농업 관련단체와 쌀값 폭락과 가격안정 대책 마련을 위해 현장 의견을 수렴하는 연석 간담회를 개최했다. |
대불산단의 명암: “축복이자 족쇄”
삼호읍을 대표하는 강찬원 의원에게 대불국가산업단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삼호읍이 농어촌에서 산업도시로 변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대불산단은 영암군 전체의 발전을 견인한 핵심 동력입니다. 조선업과 기계·부품산업 중심으로 수많은 기업이 입주하며 일자리를 창출했고, 덕분에 삼호읍은 영암에서 가장 활력 있는 지역이 됐죠.”
하지만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 조선업 불황기에는 대량 실직과 협력업체 도산으로 지역 경제가 휘청거렸다. 특정 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과제도 생겼다. 외국인 근로자가 급증하면서 주거, 문화, 복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지역사회가 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과 치안 문제, 교통 혼잡 등 주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안들도 속출했다.
강 의원은 대불산단을 “축복이자 족쇄”라고 표현했다. 성장의 동력이면서도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다각화’다.
“조선업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재생에너지, 첨단기계, 미래 모빌리티 산업으로 산업 구조를 다변화해야 다음 위기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삼호읍 30년: 농어촌이 산업도시가 되기까지
30년 전 삼호읍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강찬원 의원의 기억 속 1990년대 초 삼호읍은 전형적인 농어촌이었다. 벼농사와 어업에 의존하는 1차 산업 중심의 열악한 산업 구조. 교육이나 문화, 복지 시설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대불산단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영암군 통계연보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현황에 따르면, 삼호읍 인구는 1995년 14,321명에서 2025년 8월 현재 20,933명으로 늘었다. 영암군 11개 읍면 중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한 곳이다.
주거단지가 조성되고 학교와 병원이 들어섰다. 문화시설도 속속 생겨났다. 어느새 삼호읍은 영암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지역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 의원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가 그리는 삼호읍의 미래는 ‘지속 가능한 산업도시’다. 산업 다각화는 앞서 언급한 대로고, 정주여건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늘어난 외국인 근로자와 청년층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 성장과 주민 삶의 질이 함께 가는 친환경 정책이 필요하다.
“삼호읍은 이미 영암의 경제 심장부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군민 모두가 그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도시로 발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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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위기, 그리고 희망
“최근 몇 년 사이 인구가 빠르게 줄고 청년층이 떠나면서 지역 활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쌀값 문제, 농업 경영비 상승, 기후 위기까지 겹치며 농촌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죠. 세수 감소로 인한 재정 압박까지 더해져 군정 운영 전반이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암울한 현실이다. 하지만 강 의원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30년간 축적된 지방자치의 경험과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의회는 단순한 견제기구에서 정책 파트너로 진화했고, 군민 의식도 한층 성숙했다.
“의회의 목표는 집행부를 견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군민과 함께 현안을 고민하고, 집행부와 협력해 실질적인 해법을 찾는 것입니다. 인구소멸과 경제침체, 농업위기라는 삼중고를 극복하려면 의회, 집행부, 군민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4선 의원 강찬원이 지켜본 영암 지방자치 30년은 한마디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의회는 민원해결사에서 정책전문가로, 삼호읍은 농어촌에서 산업도시로 거듭났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인구는 계속 줄고, 재정은 열악하며, 농업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협력’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는 영암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0년의 경험이 쌓인 지금, 영암은 새로운 30년을 준비할 때다.
다음 편에서는 군청 소재지인 영암읍이 속한 가선거구를 대표하는 고화자 의원을 통해 행정 중심지의 30년 변화와 여성의원으로서 경험한 의정활동을 들어본다.
선호성·이민정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