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4도 이상저온에 영암 배 농가 ‘암술 괴사’ 피해 심각 전체 농가 50% 이상 피해…일부 지역은 90%까지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2025년 04월 11일(금) 14:11 |
![]() ▲ 이상 저온으로 인해 암술이 검게 변한 배꽃 내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부가 흑변해 결실이 어려운 상태로, 영암 지역 일부 농가는 최대 90%까지 피해를 입었다 |
“배꽃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내부를 까보면 암술이 까맣게 변해서 죽어있다. 이대로는 제대로 된 배가 열리기 어렵다”
지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이어진 이상 저온으로 영암군 배 재배 농가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최저기온이 영하 4℃까지 떨어지면서 배꽃의 암술이 흑변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한 것이다.
“겉보기 멀쩡해도 암술 검게 변해…일부 농가 90% 피해”
“지대가 낮은 곳은 거의 90%가 다 죽었다. 꽃봉오리 8개 중에 하나 살아있는 꽃을 찾기도 힘들 정도다”
도포면에서 6천 평 규모의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임상빈 씨는 취재진에게 배꽃 한 송이를 꺾어 보여주며 피해 실상을 설명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꽃봉오리를 벗겨보니 내부의 암술이 검게 변해 괴사한 상태였다.
“배꽃 한 송이에 암술이 5개가 있어야 하는데, 많은 꽃들이 암술이 검게 변해버렸다. 암술 일부만 살아있으면 배가 한쪽으로만 자라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전부 죽으면 아예 열매를 맺지 못한다”
임 씨는 “초보 농사꾼들은 겉모습만 보고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내부를 까보면 대부분 괴사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도포면 전체적으로는 평균 50%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수를 계속 돌리고 방상팬(서리 방지용 대형 선풍기)을 가동하는 등 저온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영하 4~5도까지 떨어진 데다 보통 1~2일이던 서리 기간이 올해는 5일이나 지속돼 피해를 막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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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피해조사도 없이 피해율 발표
지난 4월 4일 영암군은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현장 조사 결과, 저온 피해가 심한 일부 과수원은 전체의 70% 이상 피해를 입었고, 농가 평균 20% 전후의 피해율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암군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저희가 따로 피해조사를 아직 하지는 않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4월 말쯤에나 피해 규모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군이 구체적인 피해율(20% 전후)을 발표하면서도 동시에 피해조사를 아직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모순된 상황이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영암군에서 파악한 바로는 신북, 덕진, 군서 지역 각 1개 농가 정도가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적인 피해 상황은 꽃 8개 중 2~4개 정도가 피해를 입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8개 중 하나만 살면 열매가 맺힐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판단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 배 농사를 지어온 현장 농민들의 판단은 다르다. 임상빈 씨는 “농사를 오래 지어온 사람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즉시 알 수 있다”며 “도포만 해도 평균 50% 이상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임 씨는 “군은 5월에 배가 수정되고 열매가 맺힌 다음에야 얼마나 달렸나 안 달렸나 그걸 보고 피해를 판단한다”며, “일반적으로 피해 농가에 약값 명목으로 1헥타르당 200~300만 원 정도 지원하는데, 그것도 빨라야 5월 이후”라고 설명했다.
작년 폭염 이어 올해 저온 피해까지…농가 ‘이중고’
이번 저온 피해는 작년 여름 폭염으로 인한 일소(日燒, 햇볕 데임) 피해에 이은 것이어서 농가들의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너무 뜨거워서 꽃눈이 많이 죽었다. 올해는 꽃눈 상태가 좋지 않아 인부도 고용하지 못하고 직접 관리했는데, 그나마 좋다고 판단해 남겨둔 것까지 이번 저온으로 피해를 입었다”
임 씨의 말처럼, 배 농가들은 지난해 수확기까지 이어진 폭염으로 열과(열매터짐)와 일소 피해를 겪은 데 이어 올해 저온 피해까지 발생하자 위기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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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시설 확충 계획은 있지만…현실적 부담 커
저온 피해 대응을 위해 영암군농업기술센터는 올해 추경예산에 약 3억 원의 저온 피해 예방 관련 사업비를 편성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방상팬은 약 농가 10곳, 미세살수 장치도 일부 농가에 보급된 상태”라며, “올해는 저온 피해 경감을 위한 자재 공급과 방상팬, 미세살수 장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가에서는 이러한 시설 투자에 대한 부담이 크다. 임 씨는 “방상팬 같은 장비는 투자비가 많이 드는데, 1년에 서리가 내리는 짧은 기간에만 사용한다는 점이 부담”이라며 “기름값도 비싸고, 면세유도 지원받지 못해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전남 배 주산지 30% 피해…이상기후 대책 마련해야
저온 피해는 영암뿐 아니라 인근 나주, 순천 등 전남지역 배 주산지에서도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4월 2일 기준 전남지역 피해면적은 2,710ha로 잠정 집계됐으며, 전남도에 접수된 피해 면적은 나주 500ha, 순천 175ha, 영암 87ha, 보성 13ha 등으로 전체 재배면적의 30%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나주배원예농협은 저온 피해 대응을 위해 꽃가루를 평년 대비 3배 이상 확보했지만, 꽃가루 가격이 지난해보다 50% 올라 농가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피해 규모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재배 농가가 미리 농사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와 지자체에서 경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 농가들은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는 상황에 당장의 피해 보상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