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돼지농장 네팔 노동자 극단 선택…“괴롭힘 못 견뎌”

동료 네팔 팀장의 지속적 괴롭힘 의혹…사망 전 우울증 호소
1년간 28명 떠난 사업장…“볼펜으로 찔러, 폭언·폭행 일상적”
동료 노동자들, 사업장 변경 요구…노동단체, 28일 기자회견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02월 28일(금) 14:53

영암군의 한 돼지농장에서 일하던 20대 네팔 이주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겪었던 괴롭힘은 같은 국적 팀장에 의해 자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27일 본지 취재 결과, 네팔 국적 A(27)씨는 지난 22일 새벽 2~3시경 영암군 서호면 소재 한 돼지농장 기숙사 앞 건물 난간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해 여름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입국해 약 6개월간 이 농장에서 일해왔다.


“볼펜으로 찌르고 밥도 함께 먹지 못하게”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A씨는 네팔 출신 30대 후반 팀장과 한국인 사업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왔다. 해당 팀장은 5년째 이 농장에서 근무하며 네팔 이주노동자들을 관리해 왔다.

괴롭힘 행태는 다양했다. 팀장은 노동자들을 볼펜이나 포크로 찌르며 괴롭혔고, 식사 시간에는 본인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쉬는 시간을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면 밀치거나 폭행했다고 한다.

특히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고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괴롭힘을 가했고, “한국에서 내쫓겠다”는 본국 송환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괴롭힘으로 지난 1년간 28명의 노동자가 농장을 떠났다는 증언도 있다.


동료들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사업장 변경 요구

현재 이 농장에는 총 18명의 이주노동자가 근무 중이며, 네팔인 16명(남성 13명, 여성 3명), 베트남인 1명, 중국인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24일 민주노총 이주노조와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등 관련 단체들이 해당 사업장을 방문했다. 처음에 사업주는 면담을 거부했으나 지속적인 요구 끝에 주차장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면담 자리에서 네팔 노동자 14명은 한목소리로 사업주와 팀장의 횡포를 고발했다. 사업주는 처음에는 문제를 부인하다가 팀장의 괴롭힘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동료 노동자들은 “사람이 죽는 사업장에서 더는 일할 수 없다”며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고, 이 중 한 명은 즉시 사업장 변경 처리를 하기로 했으며 나머지 노동자들은 2주 내 처리하기로 했다.


경찰 수사와 노동단체 대응

영암경찰서는 현장 주변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한 결과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일차 파악했으나, 직장 내 괴롭힘 여부와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시신은 현재 영암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되어 있으며, 경찰은 유족의 동의를 받아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주노조와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는 사업주와 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할 계획이며, 노동청에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요구할 예정이다. 또한 내일(28일) 오후 1시 고용노동부 목포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한 수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심각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2023년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이주노동자 100명 중 75%가 ‘폭행, 폭언, 협박을 당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인격 모욕, 비하, 무시’를 당했다는 응답은 59%, ‘따돌림이나 차별’을 당했다는 응답도 41%에 달했다.

이주노조는 “한국에는 13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있는데 열악한 노동조건과 사회적 차별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만성적인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고강도 위험 노동으로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은 “같은 국적 계절노동자들 사이 갈등의 골이 깊은 경우가 잦다. 이주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을 경우 하소연하거나 민원을 제기할 곳이 없는 상황”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비극적인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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