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갈아엎고 삭발까지’ 쌀값 폭락에 성난 농심 쌀값 폭락 규탄 영암농민 총궐기대회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
2022년 08월 31일(수) 16:55 |
![]() ▲ 영암군 농민단체들이 정부의 쌀값 폭락 농정정책을 규탄하며 수확을 앞둔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는 모습. |
“수확이 이제 한 달 반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갈아엎어야 한다는 게 마음이 착잡하죠. 농민들 심정이 오죽했으면 갈아엎겠습니까”
영암군 농민들이 26일 군서면 동구림리 들녘에서 ‘쌀값 폭락 규탄 영암농민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규탄대회에서는 수확을 앞둔 농민 최치원 씨의 논 900여 평을 갈아엎었다.
최 씨는 “그동안 시장격리만 잘했어도 이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찔끔찔끔 사람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변동직불금이라도 있었을 땐 그래도 나았는데 그것도 없어지고 농민들은 정부에서 계속 시킨 대로 한 죄밖에 없다”며 절절한 심정을 토로했다.
국내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5일 20㎏ 기준 4만2522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5만5630원에 비해 23.5% 급락했다.
반면, 지난달 말 기준 쌀 재고량은 48만6000t으로 지난해 28만t에 비해 70%가량 늘어났다. 올 햅쌀이 나올 경우 가격의 추가 폭락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가격 폭락이 지속될 경우 지역농협들도 올해 햅쌀 수매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지역농협의 경우 지난해 평균 6만4000원(40㎏ 조곡) 수준에서 쌀을 사들였지만 현 쌀값을 고려하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날 규탄대회에는 전국쌀생산자협회 영암군지부, 전국농민회총연맹 영암군농민회, 한국후계농업경영인 영암군연합회 등 영암 관내 농민단체 회원과 우승희 영암군수, 손남일·신승철 도의원, 강찬원 군의회의장 및 영암군 농협조합장운영협의회 조합장 등 3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유례없는 쌀값폭락 사태에 대해 정부의 양곡정책 실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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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호 쌀생산자협회 영암군지부장은 “농산물 가격은 중앙정부 정책에 따라 요동을 쳐왔다. 시장격리 시기를 놓쳐 쌀값은 폭락하고, 연간 40만톤의 수입쌀을 방출하고, 농지 관리가 안 돼 투기에 땅값만 올라가는 것이 현실이다. 자재값 폭등까지 겹치면서 우리 농민들은 파산할 지경까지 와있다”며 정부의 실정을 꼬집었다.
정부는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쌀 37만t을 시장격리 조치했다. 하지만 시기를 놓치고 ‘최저가 입찰과 역공매’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오히려 가격 폭락만 가져왔다고 농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우승희 군수도 “추수도 하기 전에 이렇게 우리가 집회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항들을 제가 잘 알고 있고, 또 여기 계신 분들 다 한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이셨다고 생각한다. 농민을 천대하고 농업을 하찮게 여기는 이런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농약, 비료, 사료 등 농자재값은 다 올랐지만 쌀값만 떨어지는 이런 현상들을 우리가 제도적으로 해결하고 또 제도가 어렵다면 우리 힘으로 제도를 바꿔내서라도 우리 농민들이 제대로 존중받고 농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열어가겠다”고 역설했다.
논 갈아엎기를 끝낸 농민들은 전남도청까지 차량 행진을 하며 쌀값 폭락 사태에 대한 선전전을 진행했다.
![]() ▲ 전남도청까지 차량 행진을 하며 쌀값 폭락 사태에 대한 선전전을 하고 있는 모습. |
도청 앞에서 열린 대회에서 김종수 한국후계농업경영인 영암군연합회장은 “기름값, 비료값, 농약값, 인건비, 대출이자 모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데 농민의 목숨값이나 다름없는 쌀값만 유일하게 끝없이 폭락하고 있다”면서 “시장격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농림축산식품부, 쌀값으로 물가 잡으려는 정부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쌀값이 비싸서 가정경제를 운영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며 애먼 쌀값만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농민들은 쌀값보장 및 양곡관리법 개정, 구곡 전량 시장격리, 밥상용 수입 쌀 방출 중단 등을 요구하며 집단 삭발식을 진행했다.
![]() ▲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삭발식에서 영암 관내 농민단체 대표들과 한국후계농업경영인 영암군연합회 11개 읍면지회장이 단체로 삭발하고 있는 모습. |
삭발식에선 최병순 금정농협 조합장, 영암군농민회, 쌀협회 대표자 및 한농연 11개 읍면지회장이 머리를 깎으며 쌀값 폭락에 대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후 농민들은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전남도에 전달했다.
박웅 전국농민회총연맹 영암군농민회장은 “작년에 벼를 매입한 관내 농협들은 엄청난 적자가 예상되고 창고에는 아직도 처분하지 못한 나락이 쌓여 있어 올해 나락 수매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어 이를 규탄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