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Default)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2년 03월 11일(금) 14:39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미국과 유럽 등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는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오는 16일 러시아가 달러 채권을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 것이다. 이 예측이 적중한다면 러시아는 1998년 디폴트 이후 또다시 채무불이행 상황을 맞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경제 전문가들은 디폴트가 현실화할 경우 러시아 경제의 폭망은 물론 글로벌 경제도 훨씬 큰 후폭풍을 맞을 수 있게 되며,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역시 디폴트의 연쇄적 파급효과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데체 디폴트가 무엇이길래 전 세계가 러시아의 디폴트 위험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걸까? 이참에 디폴트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디폴트란 국가 규모의 채무불이행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은행융자 등에 대한 원리금(원금과 이자를 합한 돈)을 갚아야 할 날짜에 아예 갚지를 못하는 부도 상태라고 보면 된다. 국가로 치면 정부가 외국에서 빌려온 차관(대출)을 정해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구별해야 할 개념으로 모라토리움이라는 게 있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모라토리움이 “지금 돈 없으니깐 나중에 갚을게”라는 선언이라면, 디폴트는 “나 돈 없어, 아 몰랑~ 배째”라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둘 다 선언을 하는 순간 국가 신용도가 바닥을 치게 되는 건 비슷하지만 디폴트의 경우엔 바닥을 아예 뚫고 매장되는 수준이라 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디폴트라는 건 한 번이라도 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역사가 암흑으로 접어들게 되는 국가 막장 테크 단계 중 하나이자 후폭풍으로 주변국들은 물론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기도 하며, 특히 신흥국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상황을 안겨주기도 한다.

디폴트가 발생할 경우 채무자는 채무에 대해 모든 의무가 없어지지만, 동시에 자신의 재산통제력도 상실되기 때문에 채권자의 경우 담보가 있다면 담보를 압류해서 채무를 상쇄할 것이고, 담보가 없다면 채권액에 상응하는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해서 채무를 상쇄할 수도 있다. 즉 “배째”라고 하면 진짜로 째는 일도 생긴다. 쉽게 말해 못 받은 돈 받아내려고 채권자 국가가 채무자 국가에 군대를 이끌고 침공까지도 감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프랑스는 1차대전 이후 독일이 전쟁배상금을 갚지 못하자 프랑스는 군대를 이끌고 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방을 침공하는 루르 점령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서 독일과 프랑스를 설득해 프랑스군은 점령지를 독일에 돌려주고, 독일은 프랑스에 전쟁배상금을 갚은 적이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디폴트나 디폴트 위기 상황은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2010년 국채만기로 인한 유럽연합발 금융위기의 중심인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 이어서 미국까지 디폴트 위기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그리스는 결국 경제위기를 맞아 2015년 7월 1일부터 디폴트에 들어가게 될 뻔했으나, 유럽 국가들과의 협상으로 디폴트를 겨우 모면하고 구제금융을 다시 받게 됐다.

2017년 11월 16일에는 베네수엘라가 공식적으로 디폴트 선언을 했고, 2020년 3월 7일에는 레바논이 선언했다. 다만 이들 나라는 이전부터 이미 신용이 붕괴된 상황이라 애초에 빌릴 수 있는 곳도 없어서 금융기관의 타격은 미미했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라는 디폴트 위기 속에서 이를 피하고자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협상용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는 주장도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라 그렇게 했다간 신용을 잃게 되고 지금의 베네수엘라처럼 됐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당장 피해를 크게 입고 후유증이 남더라도 이를 악물고 빚을 갚았기 때문에 오히려 신용을 얻었고, 이후 수출시장 개척이 더 쉬워졌다는 분석이다.

사실 현실에서 디폴트는 기업이나 가계의 디폴트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기업이나 가계에 비해 국가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이 사태로 인한 파급력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

앞서 잠시 언급한 그리스 디폴트 위기 사태를 되짚어보자면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 국채를 매입한 유럽은행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되며 파산 위기에 처한다. 이후 불안한 시민들이 돈을 빼러 은행에 달려가는 소위 뱅크런 조짐까지 나오면서 시중에 돈은 돌지 않게 됐고, 연쇄적으로 당시 한계치까지 다다라 있던 기업들 역시 줄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어 실물 경제 역시 타격을 받게 돼 붕괴 위기를 맞게 되고 그러한 파급효과로 글로벌 투자자금 또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신흥국들에 대한 투자자금 역시 회수해 가는 탓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국들의 주식, 채권, 부동산 시장도 위축되는 상황까지 초래됐다. 다행히, 유럽 국가들과의 협상으로 그리스는 디폴트를 겨우 모면하게 됐지만, 그리스 사태는 그야말로 디폴트 위기의 파급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또한, 유럽연합이나 IMF가 주로 남유럽 위기 지역의 디폴트 사태를 막고자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한 것이 이 지역 국가들이 회생할 싹수가 어느 정도 보이는 것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유럽의 나름 영향국인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연쇄 도미노 디폴트 현상을 우려해 이를 막기 위한 측면이 컸다고도 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1990년대 당시 혼자서 디폴트 해봐야 혼자 망하고 끝이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와 동시에 채권자인 IMF의 억지 요구도 받아들여야만 했었다. 오로지 선택지라고는 빚을 빨리 갚아서 채권자의 요구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으니 이 얼마나 굴욕적인 나날이 아니었던가. 여담이지만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IMF에 대한 인식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으니, 최근까지도 공매도와 관련해 IMF가 기재부에 조언했을 당시 “어디 내정간섭하고 앉았냐”는 험한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