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몰라도 상관없는 이야기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2년 01월 07일(금) 11:55

니콜라 푸생_아슈도드의 흑사병

바이러스의 창궐은 세계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이전, 인류 역사에 기록된 전염병 중 하나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퍼진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약 5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 대유행을 이끌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의 수가 작년까지 대략 544만명 정도로 집계된 것과 비교하자면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남아있다. 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퍼진 이러한 스페인 독감은 많은 사람을 묵시록적 공포상태 즉, 세계 종말의 공포로 몰고 간 바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희망을 품고 대처하면서 새로운 삶을 영위해 왔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어느덧 두 해를 지나 맞이하는 새해다. 새해에는 코로나와 관련된 희망 섞인 얘기들만 들려오면 좋겠다. 코로나 대유행과 함께 한참 주목받고 회자되던 책이 있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이다. 이참엔 지난 날 여러 번 완독을 실패하고 내팽개쳐두다 코로나19 창궐과 함께 겨우 마무리를 짓게 된 이 소설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재앙의 시작

‘페스트’는 어느 날 프랑스의 ‘오랑’이라는 도시에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도시가 봉쇄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페스트’ 속의 오랑 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지난 2020년 1월경 봉쇄됐던 중국의 후베이성 우한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고 한다. 인적이 사라진 유령의 도시. 당시 도시 봉쇄 속 시민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페스트의 배경이 된 ‘오랑 시’를 보면서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는 봉쇄된 오랑 시의 시민들이 사실상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상황이 그려져 있다. 그 속에서 시민들은 그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한 채 페스트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재앙을 대하는 각자의 모습

페스트와 싸우는 과정에서의 시민들의 모습은 네 가지의 유형으로 나뉘어 그려지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은 페스트든 무엇이든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작품속에서는 외부에서 취재를 위해 들어온 기자 ‘랑베르’가 대표적인 인물로 “이건 당신들의 일이지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회피형, 도피형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 사람은 지금 있는 곳은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일 뿐, 항상 다른 곳을 바라보며 나의 행복과 사랑은 저 먼 곳에 있다고 여긴다.

두 번째 유형은 이 작품이 던지는 중요한 물음과 관련돼있는 사람으로 대표적으로 ‘판느루’ 신부가 있다. 판느루 신부의 태도를 보자면 페스트라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인간들이 지은 죄가 커서 이러한 죄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이 징벌을 내린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초월적 상황을 기도와 믿음으로 어떻게 돌파하여 극복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은 주인공인 ‘베르나르 리외’와 같은 사람으로 의사인 리외는 전염병과 맞서 싸운다. 함께 등장하는 리외의 조력자인 ‘그랑’과 ‘타루’ 또한 이와 비슷한 유형의 인물에 해당된다. 이들은 작품에서 발생한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전염병인 페스트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보자면 지금의 우리 주위에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코로나와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유형은 이러한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 이들은 사회 혼란을 이용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끊임없이 공포를 조장하며 오히려 사회 혼란을 바라는… 작품 속에서는 ‘코타르’가 대표적이라 볼 수 있다. 코타르는 혼란과 공포의 상황 타개를 위해 사람들이 전염병 퇴치에 여념이 없는 틈을 이용해 밀수를 하는 자이다. 남의 불행과 사회의 재난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 창출을 극대화하는 유형은 우리 주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카뮈가 전하는 메시지

페스트는 오랑 시에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닥쳐왔다. 그리고 오랑 시의 공장과 창고에서 수많은 쥐 사체들이 발견되며 페스트는 창궐하게 됐고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치닫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공포와 혼란에 휩싸이게 됐고, 오랑 시 안에서는 그 누구도 페스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 시민들이 딴 사람들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겸손할 줄을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사업을 계속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시켜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생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필자가 느낀 바는 우리는 바이러스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무력함과 한계를 깨달으며 겸손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백신이 개발되고 먹는 치료제까지 등장해 팬데믹의 종식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소식들도 들리지만,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전 세계적으로 공포와 절망 속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그리고 코로나 이전에 당연하게 누린 일상들은 어느새 사라졌고, 어쩌면 그 일상이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재앙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작품 ‘페스트’ 속에는 철학적 사유들이 많이 있어, 이야기의 재미를 떠나 페스트라는 재앙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모습들이 이런저런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준다. 페스트를 바라보는 판느루 신부의 시각을 볼 수 있는 연설 부분 역시 그렇다.

“너무나 오랫동안 이 세상은 악과 타협해 왔었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이 세상은 성스러운 자비 위에서 안식하고 있었습니다. 회개하는 것으로써 충분했고 모든 것은 허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가 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회개를 하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는 가장 쉬운 길은 그냥 제 멋대로 살아가는 것이요, 그밖의 것은 신의 자비로 해결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오래 계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이 도시의 사람들 위로 그 연민의 얼굴을 보여주시던 신께서도 기다림에 지치고 그 영혼의 희망에서 실망하사 마침내 외면을 하신 것입니다. 신의 광명을 잃고 우리는 바야흐로 오랫동안 페스트의 암흑 속에 빠지고야 말았습니다.”

판느루 신부는 페스트를 신의 고마움을 모르는 오만방자한 인간에 대한 징벌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해 보자면 납득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작품 후반부에서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페스트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아내를 찾아서 오랑의 사태를 피하고자 했던 랑베르 기자나 판느루 신부도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 페스트와 싸워나갈 방법을 고민하게 되며, 주인공 리외를 중심으로 다함께 페스트에 맞서고 희망을 타진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작중 등장인물 중 ‘그랑’이라는 노인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선의를 가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페스트와 싸워 나가는 인물이다. 어쩌면 카뮈가 가장 영웅적 인물로 그린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 중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냐”라는 물음에 그랑은 “제일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한다는 건 뻔한 이치입니다. 아아, 만사가 이렇게 단순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민원과 사건 사고들을 처리하고 수습하기에 쉴 틈이 없었던 현장 공무원들, 의료인들과 함께 뒤에서 업무를 보조했던 요원들 그리고 의료시설에서의 각종 폐기물들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처리하는 일을 해 온 미화원들이 생각난다. 그들이 영웅이다. 그들은 카메라 렌즈나 언론에 제대로 포착되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는 존재들이기에 더욱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페스트를 통해 카뮈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 작중의 몇 구절을 남겨본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피고 있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품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