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규에 없는 ‘과격한 표현’…영암군, 표현규제 기준 만드나

현수막 정비 가이드라인 추진

담당자 ‘법적 기준 외’ 설명
29일 공고선 해당 문구 빠져
상습·반복 위반자 엄정 단속안
과거 비판 현수막 처리 논란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6년 10월 02일(금) 13:17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영암군이 법과 관련 조례에 없는 ‘과격한 표현’을 현수막 정비의 주요 의제로 자체 제시하고, 기존 법적 기준과 별도의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이 개념이 실제 철거·게시 제한 기준으로 쓰이면 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군은 지난 28일 ‘불법현수막 철거 갈등조정 협의회’ 위원 20명을 구성해 10월부터 운영한다고 밝혔다. 협의회에서는 ‘과격한 표현이 담긴 현수막’과 장기간 게시되는 현수막, 같거나 비슷한 내용이 반복 설치되는 현수막 등을 주요 의제로 3~4차례 회의를 거쳐 정비 기준을 논의할 계획이다. 군은 표현 내용과 철거 시점 등을 둘러싼 형평성 문제와 민원이 반복돼 협의회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과격한 표현’ 법규엔 없어

현행 옥외광고물법 제5조 제2항은 광고물에 표시할 수 없는 내용을 범죄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잔인하게 표현하는 경우, 음란·퇴폐적 내용, 청소년 보호 저해, 사행심 조장, 인종·성차별적 내용에 따른 인권침해 우려, 다른 법령에서 광고를 금지한 경우 등 6개 유형으로 열거하고 있다.

군이 근거로 언급한 종전 전남도 옥외광고물 조례(2025년 5월 시행본)는 지정게시대 현수막의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내용’과 정당현수막의 ‘허위·혐오·비방’을 제한한다. 영암군 조례는 광고물의 디자인 개선과 도시경관과의 조화 등을 심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법과 두 조례 모두 ‘과격한 표현’을 별도의 금지·정비 기준으로 두고 있지 않다.

담당자의 근거 설명은 실제 법규 내용과 차이를 보였다. 본지가 ‘과격한 표현’의 근거를 묻자 담당자는 처음에는 법령이나 기준에 있다고 답했다. 이어 전남도 조례 등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표현을 자제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다며 적색·흑색 사용 제한도 예로 들었다. 다만 법으로 금지하기보다는 강한 표현을 자제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조항을 요청하자 바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고, 영암군 조례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담당자가 언급한 ‘위화감’도 종전 전남도 조례에는 없다. 적색·흑색 규정은 광고물의 바탕색과 표시방법에 관한 것으로, 문구의 표현 강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다.

담당자는 ‘과격한 표현’ 등이 포함된 의제를 첫 논의를 위한 안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적 기준 밖 별도 가이드라인

군이 협의회를 통해 마련하려는 결과물은 현행 법령상의 기준 자체가 아니라 별도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설명이다. 도시디자인과 담당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법적 구속요건은 이미 법령과 기준 등에 마련돼 있다면서 “법적 기준 외에” 자체적으로 협의할 부분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물의 성격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옥외광고물법은 법 적용 때 국민의 정치활동의 자유와 그 밖의 자유·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정규제기본법 역시 규제는 법률에 근거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해야 하며,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규제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체장을 비판한 현수막의 게시를 불허한 사건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판단하고, 게시 불허 재검토와 담당 직원 재발 방지교육을 권고했다. 해당 지자체는 현수막이 단체장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조례의 ‘특정 개인 또는 단체 비방’ 금지 조항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법규에 열거되지 않은 ‘과격한 표현’이 단순한 자율적 권고를 넘어 실제 게시 제한이나 철거 기준으로 적용될 경우, 법이 정한 표현 제한의 범위를 행정 가이드라인으로 넓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무엇을 ‘과격하다’고 볼 것인지 객관적인 한계도 정해져 있지 않아 행정의 자의적 판단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쟁점이다.

군은 하루 뒤인 29일 ‘현수막 정비방안(안)에 대한 주민의견 수렴 공고’를 내고 자율 정비 가이드라인 마련을 공식화했다. 다만 공고의 주요 내용에는 전날 보도자료에서 협의 의제로 제시했던 ‘과격한 표현’이 별도로 적시되지 않았다. 공고에는 이해관계자 간 이견 조율과 합의안 도출, 상습·반복 위반자 및 법정 요건을 위반한 정당현수막에 대한 즉시 철거·과태료 부과, 자진 철거 유예기간 운영 등이 담겼다.


비판 현수막 ‘내부 판단’ 전례

영암군의 현수막 내용 판단은 앞서도 논란이 됐다.

2024년 6월 25일 영암군농민회가 비료 보조금 삭감 등에 반발해 게시한 ‘우승희 군수 규탄’ 현수막이 철거됐다. 당시 농민회 관계자는 군 담당자로부터 해당 문구의 미관상 문제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고, 이후 군은 불법현수막 일괄 단속을 철거 이유로 제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농민회가 간척지 태양광 정책에 반대하며 게시한 현수막을 군이 철거했다. 이후 농민회가 지정게시대 게시를 신청했지만, 군은 ‘영암군·군의회 규탄’처럼 실명이 없는 현수막은 허가했다가 철거한 반면 ‘우승희 군수’ 실명이 들어간 현수막은 아예 불허했다.

당시 담당자는 본지 취재에서 해당 사안이 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는 취지로 설명하며 게시 여부를 “내부적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군은 당시 농민회 현수막 3장이 먼저 철거된 사실을 인정하고, 해당 처리가 잘못됐다며 재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군은 9월 29일부터 10월 27일까지 영암군 거주 주민을 대상으로 현수막 정비방안에 대한 의견을 받고 있다. 방문과 우편, 이메일로 제출할 수 있으며 접수된 의견은 갈등조정 협의회 안건과 불법광고물 정비 정책 수립 자료로 활용된다.

윤철민 영암군 도시디자인과장은 “현수막을 설치하는 쪽과 정비하는 쪽의 입장이 다른 만큼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하기보다 이해관계자들이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협의회에서 나온 의견을 충분히 듣고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정비 기준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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