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으로 쪼그라든 ‘공공연애’…“여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해요”

작년 22명→올해 8명, 영암군 청춘남녀 프로그램의 민낯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5년 06월 20일(금) 13:35

“실제 결혼까지 이어진 사례는… 없었습니다.”

16일 오후, 영암군 인구청년과 관계자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작년 ‘청춘남녀 만남의 날’ 행사 성과를 묻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작년 3월, 영암군청 여직원 11명과 현대삼호중공업 남직원 11명이 만났다. 군이 야심차게 준비한 만남 프로그램. 22명 중 실제 커플로 이어진 건 단 1쌍이었다.

“당시 1커플 정도가 만남을 이어갔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는…”

말끝이 흐려진다. 성공률 4.5%. 그런데 올해는 더 초라해졌다.


22명에서 8명으로… 64% 급감

올해 행사 참가자는 8명. 작년의 3분의 1 수준이다. 왜 이렇게 줄었을까.

“아무래도 여직원들 입장에서는 공개적인 미팅 행사가 부담스럽잖아요.”

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교육지원청에서는 여성 3명, 남성 5명이 신청했다. 영암군청에서는 남직원 7명이 신청했지만, 인원을 맞추기 위해 5명만 참가했다.

“교육지원청 쪽에 미혼 여직원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공개적 미팅’에 대한 부담감. 이것이 핵심이었다.


예산도, 계획도 없었다

“이번에도 예산을 따로 확보한 건 아니었어요”

행사 비용은 20만 원 남짓. 기존 행사운영비를 쪼개 썼다. 타 지자체 성공사례 벤치마킹?

“딱히 없었습니다.”

그럼 왜 또 했을까. 작년에 실패했는데.

“작년에 남직원들이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는 의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갑작스럽게 하게 됐어요”

작년엔 우승희 군수의 지시로 진행됐다. 올해는 어땠을까. 기자가 물었다.

“올해도 군수님이… 그래서 추진된 건가요?”

“그러니까 지시라기보다… 이런 행사를 또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어요.”

남직원들의 요청도 있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마디가 나왔다.

“사실 올해도 이 행사를 할지, 저도 갑작스럽게 하게 된 거라…”

체계적 준비도, 충분한 예산도 없었다. 그저 ‘했다’는 실적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도 보도자료는 나갔다

‘영암 청춘남녀, 설렘 가득한 하루 보내’

13일 배포된 보도자료 제목이다. 8명이 카페에서 차 마시고 목재 미니의자를 만든 행사. 사실상 소규모 직원 모임이 ‘청년정책’으로 둔갑했다.

올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한 커플이 상호 호감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사생활 문제가 있어서 더는…”

후속 관리도 없다. 그저 ‘만나게 해줬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 영암군이 배포한 보도자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는데

영암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가 ‘만남 부족’ 때문일까?

“만날 기회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여러 요인이 복합적인 것 같아요. 단순히 만남의 기회만으로는…”

관계자도 안다. 하지만 대안은 없다.

“내년에도 계획이 있으신가요?”

“내부 의견을 수렴해서…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으면 예산을 세워보겠지만, 일단 현재까지는…”

애매한 대답이 돌아온다.


세금으로 하는 8명의 소개팅

작년 본지는 이 행사를 두고 “결정사(결혼정보회사) 자처하는 영암군”이라는 제하의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사생활 침해, 시대착오적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1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참가자만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여성 중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27.5%에 불과하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 1위는 ‘결혼자금 부족’이다.

영암군도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같은 행사를 반복할까.

기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애쓴다는 건 알겠는데, 솔직히 이런 프로그램이 영암군 인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전화기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영암군도 나름대로 애쓴다. 청년 창업 지원, 주거비 보조, 일자리 창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도 청년은 계속 떠난다. 결혼? 더 요원하다.

가릴 처지가 아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8명의 소개팅이라도.

영암군의 절박함은 이해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것과 영암군이 주는 것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보도자료로 포장된 8명의 만남. 그것이 오늘 영암 청년정책의 한 단면이다.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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