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택 좁고 얕은 이야기 선호성 기자 opennews@openmedia.co.kr

2021년 12월 24일(금) 14:43

명성황후

최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의 쥴리 문제를 비롯한 허위경력 논란들에 대한 여권의 공세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수정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이 “국모를 선거하는(뽑는) 것이 아니다”라며 반박을 하는 언론의 보도를 접했다.

이상한 논리다. 뜬금없이 국모를 뽑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국모를 뽑는 선거가 아니니깐 비판을 하지 말라는 취지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최순실은 누가 뽑았는가? 아무도 뽑지 않은 최순실은 어떻게 박근혜 정권 내내 사실상 권력의 제1인자가 돼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하게 된 건가? 2014년까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박관천 전 경정은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 씨(정윤회)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2015년 1월 동아일보 보도 인용)

아무튼 이상한 얘기는 알아서들 판단하는 거고 이왕 국모 얘기가 나온 김에 실제로 국모를 뽑는 절차인 ‘간택’에 대해 한번 알아봤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인지라 이참에 여러 문헌을 살펴 정리해 봤다.

의의

간택(揀擇)은 조선 태종 시기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명의 제도를 참조해 신설한 절차로, 그 이전 시대엔 처녀단자(요즘으로 보면 왕비 후보 지원서 정도)를 받고 규수, 장부들을 궁으로 불러 모아 평가하는 제도는 없었다. 전조 고려에선 왕실에서 상대 집안에 전갈을 보내 혼인의 뜻을 전해 상대 가문의 의사를 들고 결정하는 사례가 일반적이었다.

등장배경

조선에 간택이 생기게 된 원인에는 이속(李續)이라는 인물과 관련이 깊다. 처음 등장은 1417년 9월 2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의해서이다. 태종이 후궁 소생의 딸 정신옹주를 시집보내기 위해 점쟁이를 시켜 그 짝을 찾는데, 이때 이속이 사주를 알아보러 온 점쟁이를 쫓아내면서 “내 아들을 몸종의 딸에게 장가보낼 순 없다. 내 아들은 죽었다. 그러나 상대가 정혜옹주라면 살아있을 수도 있다”라는 발언을 한 것.

정신옹주의 생모인 신녕궁주 신씨는 본래 출신이 몸종이고, 정혜옹주의 생모인 정의궁주 권씨는 명문가 안동 권씨 가문의 규수였으니, 쉽게 말해 “몸종 출신의 후궁 딸을 며느리로 맞는 건 나랑 급이 안 맞으니, 정 나와 사돈을 맺으려거든 명문가 출신의 후궁 딸을 보내라!”고 망언을 한 것이다.

태종이 누군가. 형제 둘을 죽이고 한 명을 귀양보내는 피의 숙청과 두 번의 정사를 치르고 왕위에 오른 킬방원이 아닌가. 그런 태종을 상대로, 그것도 자신이 지극히 총애하는 후궁과 그런 후궁의 딸이자 엄연한 왕의 핏줄인 옹주까지 싸잡아 무시한 언사였기에 이에 대해 대단히 분노한 태종은 이속에게 곤장 100대를 때리고 서인으로 강등시켜 버린다.

그런데 이번엔 의정부와 육조 신하들이 들고일어나 무한 상소를 올리니 이에 태종은 이속의 전재산을 몰수하고 급기야 관노로 강등시킨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평생 금혼령, 쉽게 말해 한평생 솔로부대에서의 복무를 명받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신하들이 이속의 신상털기에 들어갔고 이속의 당숙과 기타 친척들은 풍기문란을 이유로 곤장행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이로 인해 이속의 당시 망언은 말 한마디에 패가망신을 당한 조선 역사의 대표적 케이스로 자리잡게 된다. 이 사건 이후 기존과는 다른 선발 방식을 만들라는 태종의 명에 의해 간택령 제도가 처음 만들어지게 된다.

방식

왕이 명을 내려 여러 후보자를 대궐에 불러 모아놓고 왕실의 웃어른들이 면접해 뽑았다. 원칙상으로는 양인 집안의 딸이면 누구든 간택 대상자가 됐다고는 하나 왕비나 세자빈을 아무나 뽑을 수는 없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였던지라 결국 다들 라인을 타고 각 정파가 미는 후보들 간의 경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과 왕세자의 정실을 고르는 간택은, 여러 규수를 놓고 크게 3단계(초간, 재간, 삼간)로 추슬러 골라내는 신중한 작업이었다. 주로 왕이나 세자보다 2~3세 연상의 여성을 선호했고 이 탓에 조선의 왕 중 상당수는 왕비보다 연하였다고 한다. (윤민호가 부릅니다. 연상의 여인) 이보다 격이 떨어지는 후궁 간택이나, 기타 왕자의 정실, 혹은 공주나 옹주의 남편을 고르는 간택은 간단히 초간과 재간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간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떤 집안도 혼인할 수 없는 금혼령이 내려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왕실의 혼사는 국가의 대사였기 때문이다. 때때로 명나라 사신들은 이런 때를 절묘하게 이용해 공녀를 뽑아가는 짓거리를 하기도 했다. (중궈가 중궈했다)

정쟁 속 명분의 변질

간택은 사전에 다 정해놓고도 왕실의 권위를 위해 시행하는 철저하게 정치적인 행위였다. 국왕은 한 나라의 군주이자 억조창생의 어버이로서 종사를 번성케 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마땅히 현명하고 어진 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맞아들여야 하며 이를 위해 여러 사람을 궁에 맞아들여 자질을 살핀다는 것이 간택의 명분이었다. 부마나 후궁 간택이야 그렇다 쳐도 중전과 세자빈이라면 이는 국모, 차기 국모의 위상과 권위를 제고하는 중요한 절차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 세도정치기에 이르면 아예 간택은 형식적인 요식절차에 불과해지고 세도가의 적당한 딸을 왕후로 간택하는 지경에 이른다. 순원왕후가 철종비를 간택하려 할 때 노론, 소론 규수들 가릴 거 없이 뽑자고 했지만 결국 안동 김씨 가문의 여식이 중전으로 간택된 사례가 대표적. (나라의 망조가 별갠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그저 세도가들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수단으로 전락했으니 그 이후 벌어질 일들이야…)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던 혜경궁 홍씨나 집이 좋지 않던 명성황후의 경우엔 이런 정파 간의 경쟁을 없애기 위해 영조와 흥선대원군이 일부러 고르기도 했지만, 이 경우도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간택된 여식이 속한 지파가 문중 내에서 ‘상대적으로’ 한미하거나 평범했을 뿐, 문중 자체는 엄연한 명문가였다.

요즘엔

아는 지인이 오래전 간택을 당한 적이 있었다. 웬 말인가 싶겠지만 가끔 길고양이들이 자기 주인이 될 인간을 직접 선택해서 따라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요즘엔 이를 두고 ‘간택’이라 한다고. (하지만 절대 ‘국모’가 아니라 ‘집사’라는 게 함정)

지인 역시 운명적 간택을 받아들인 케이스였다. 지인은 그 ‘개냥이’와 여전히 행복하다고 전한다. 여기서 개냥이는 가끔가다 개처럼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겐 그저 길고양이 주제에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묘생 역전을 해낸 개냥이 중 한 마리로 보일 뿐)

실제로 전국에서 키워지는 고양이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는 길에서 ‘집사 간택’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다른 가축은 인간이 먼저 길들였지만, 고양이는 인간에게 먼저 접근해 같이 살기 시작한 케이스이므로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하다.

기본적으로 개보다 내성적인 성격인 고양이 습성상, 이렇게 자발적으로 따라와서 애교를 부리는 개냥이들의 정치적 노림수는 간택이라는 명분으로 여전히 인간 세상에서 잘 먹히는 것으로 보인다. (잘했어! 치타!)